[기자의 눈/구자룡]中기업사냥…강 건너 불 아니다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중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에너지 블랙홀’이 돼 세계 2위 에너지 소비국으로 부상하면서 공격적으로 에너지를 사들이고 나아가 에너지 관련 기업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와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컨소시엄은 지난달 말 이라크가 실시한 입찰에서 남(南)루메일라 유전개발권을 따냈다. 이들 기업이 개발에 따라 받을 수수료는 당초 컨소시엄이 제시한 배럴당 3.99달러보다 크게 낮은 2달러였지만 중국은 개의치 않았다. 또 중국 내 에너지 기업 1, 3위인 중국석유와 중국석유해양은 최근 스페인의 렙솔이 아르헨티나 석유기업 YPF에 가진 지분 매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는 합쳐서 226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어서 성사되면 중국 해외기업 인수합병 사상 최대 액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중국투자공사(CIC)는 캐나다의 광산업체 ‘텍 리소스’의 주식 15억 달러어치를 매입하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홍콩 언론은 올 들어 성사된 굵직굵직한 중국 기업의 해외 에너지기업 인수합병이 최소 6건이라고 전했다.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의 리룽룽(李榮融) 주임은 4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세계 싱크탱크회의’에서 “중국의 3대 에너지 기업을 다 합쳐도 미국의 모빌사 한 개 규모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 기업들이 세계의 에너지기업 인수합병을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독려했다. 세계를 향해 중국이 에너지기업 인수합병을 가속화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에너지 인수합병을 뒷받침하는 것은 2조 달러에 육박하는 막대한 외환 보유액이다.

이런 중국의 왕성한 해외 에너지기업 인수합병은 한국에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유가스 탐사기업인 스위스 아닥스가 대표적인 사례. 한국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 관할지역인 아르빌에 200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자이툰 부대를 파견해 이라크전쟁 뒤 복구에 한몫을 했다. 쿠르드 지역과 이런 인연도 있어 한국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아닥스 인수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지난달 말 입찰에서 아닥스는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에 72억 달러에 낙찰됐다.

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단기수익이나 경제성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며 “이번에도 월등히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하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중국 기업과 에너지기업 입찰에 경쟁할 일이 많을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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