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용희]웃음, 세상을 공격하다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0분


웃음의 공격이 시작됐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대박을 친 작품이 대부분 코믹물이다. 작년 수백만 명의 관객몰이를 한 ‘과속 스캔들’부터 시작하여 최근 관객몰이를 한 ‘7급 공무원’ ‘거북이 달린다’ ‘킹콩을 들다’가 대표적이다. 충무로에서는 예상도 못한 일이다. ‘과속 스캔들’이 개봉됐을 때 충무로는 조그만 소품 정도로 여겼다. 차츰 관객이 모여들자 충무로도 놀라기 시작했다. 과속으로 급조된 가족 구성이란 설정도 황당했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웃음과 가족애가 관객을 모이게 했으리라.

문화기획자는 불황기가 되면 대중 심리가 어디로 모일까에 고심하곤 한다. ‘트랜스포머’가 뜨면 아하, 그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폭력과 액션으로 날려버리고 싶어 해, ‘쌍화점’이 뜨면 역시 불황기에는 성욕 분출이 최고야,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뜨면 그래, 불황기엔 가족밖에 없지라고 분석할지 모른다. 코믹물이 뜨면 그래, 불황기엔 우울함을 잊고 싶어 하니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모두가 결과론적인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최근 코믹이란 키워드는 좀 더 의미 있는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웃음을 천시해 왔다. 뭐, 한국뿐이었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고상한 장르로, 희극을 천한 장르로 구분하여 설명한 바 있다. 웃음을 주는 광대는 예로부터 가장 천한 직업의 하나였다. 한국사회에는 오랫동안 가부장제와 군사문화로 인한 엄숙주의가 팽만했다. 괜히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이고 ‘속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곤 했다. 한국사회 공공장소에서 박장대소하는 여자는 아줌마들밖에 없다. 그들이 박장대소하는 순간 이미 여자가 아니다. 신사임당의 잔잔한 미소, 웃음은 내면화되고 억압된 기제였다.

성숙한 인간의 지적인 소통방법

최근에는 ‘웃음의 사회학’이 달라지고 있다. 젊은 신세대를 대상으로 판매혈전을 벌이는 휴대전화 광고와 맥주 광고에서 코믹 광고가 급증하는 추세다. 사람들은 ‘쇼’를 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쿡’ 하기 시작한다. 코믹은 경쟁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긴장을 순식간에 해소한다. 웃음은 긴장된 근육을 일순간 완벽하게 이완시킨다. 웃음은 횡격막의 짧고 단속적인 경련 수축을 수반하는 깊은 흡기, 신체운동이다. 배를 움켜잡고 웃을 때 몸이 흔들리므로 머리는 앞뒤로 끄덕여지고, 아래턱이 상하로 흔들리며 입이 크게 벌어진다. 그래서인지 웃음 치료, 웃음 요가라는 이름으로 웃음을 신체적 치료의 도구로 삼는 센터가 늘고 있다. 웃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간지럽게 해서 웃는 생리적 웃음, 외면으로만 웃는 사교적인 웃음, 기가 막힌 상황에 화를 낼 수도 없어 어이없이 웃는 웃음,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어색한 웃음, 정신병자들의 병적인 웃음…. 건강한 웃음은 무엇일까.

웃음은 강제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다. 웃음은 우선 시대적 문화적 공유가 전제되고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생겨난다. 코맹맹이 소리로 외치는 ‘영광인줄 알아 이것들아∼’를 들으며 웃을 수 있어야 개콘의 문화 공유자이다. 다른 사람이 다 웃으니까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웃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마음이 열려 있고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개방된 생각을 가져야 웃을 수 있다. 편견을 넘어서고 개인차 문화차 세대차를 넘어설 때 웃을 수 있다. 웃음은 어떤 차별과 억압을 벗게 해 주는 집단적 카타르시스이다. 하여 유머는 성숙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소통방식이다. 유머가 발달한 나라는 선진화되고 개방된 나라다. 독재국가에는 유머가 발달할 수 없다. 유머와 기지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정계의 대립과 반목, 비정규직과 88만 원 세대, 유명인의 자살과 경기 불안, 지금 한국인을 지배하는 것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감이다. “세상에서 가장 심하게 고통 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라고 니체가 말했던가. 인간은 행복해서 웃지 않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웃음을 향해 떠나기로 작정한다.

내 주변 여유있게 살펴볼 수 있어

작년 오쿠다 히데오의 코믹 소설 ‘공중그네’가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로 등록되더니 올해 지하철 잡상인의 하류인생과 웃음을 다룬 우상미의 작품 ‘날아라, 잡상인’이 민음사에서 주는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웃음을 선택했다. 영화와 소설, 만화와 TV 오락물에서. 코믹물은 사람들의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낄낄대기 시작했다. 무서운 현실을 눈감아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좀 더 세상과 주변을 여유 있게 관조해보려고, 좀 더 멋진 소통을 만들어보려고.

오늘 당장 집에 있는 아내에게 말해보라. “당신 결혼했나요?” 깜짝 놀란 아내, 말까지 더듬거리며 “아, 아니, 당신 무슨 말이야?”라고 할지 모른다. 이어지는 남편의 말. “아니, 결혼 안 했으면 청혼하려고, 너무 예뻐서….” 아내가 낄낄거리며 나자빠질 거다.

김용희 문학평론가·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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