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어느 소설가의 한반도 걱정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그 소설 앞쪽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14년 여교사가 자신을 성폭행해 온 상사의 머리에 구소련제 토카레프 권총을 쏘아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통일 대한민국에서 총기는 도난차량보다도 구하기가 쉬웠다…모두가 청천벽력같이 찾아든 평화통일의 대혼란 속에서 공화국 군대의 무기회수와 그 관리가 허술했던 탓이다. 그리고 그것은 2011년 한반도에서 난데없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튀어나온 수천의 마귀들 중 한 마리에 불과했다….’

또 다른 모습들도 그려진다. 통일한국은 북한 인민 모두를 주민등록화하는 데 실패해 적(籍)이 없는 인간, ‘대포 인간’들이 생겨난다. 이들이 조직폭력배로 서울의 밤을 지배하는 세력이 된다. 또 10년간 군에서 복무해야 하는 젊은이 120만 명이 강제 전역되면서 한순간에 직업을 잃고 불만세력으로 변하거나 일부는 무장 저항한다. 이남 사람들은 이북 사람들을 “게으르고 경쟁력 없는 인간”이라고 모욕하고, 이북 사람들은 이남 사람들을 “거만하고 인색하다”고 비난하며 부딪친다.

소설가 이응준 씨는 ‘국가의 사생활’이란 책에서 갑자기 찾아온 통일 이후 상황을 암울하게 그려냈다. 거기에는 복부인들이 먼저 달려가고, 일반인은 이북의 명승지를 여행하는 등의 환상은 배제됐다. 작가는 통일 뒤 간단치 않은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역으로 통일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의 소설이 가상현실로만 읽히지 않는다. 최근 북한의 행동은 막가파를 떠올리게 한다.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2차 핵실험, 미 독립기념일에 중거리미사일 발사, 주변국을 향한 날 선 비난…. 북한 도발의 이면에는 지도체제의 불안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갑자기 권력을 3남 정운으로 넘기는 과정에서 군부가 힘을 얻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 탓일까. 최근 미국 연구소들에서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상정한 워게임이나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 부쩍 자주 거론된다. 심지어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한의 정권교체나 내전, 대규모 탈북사태 등에 대비한 한미 연합군의 작전계획인 ‘작계 5029’를 수정 보완하고 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북한의 도발에 미국은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미국은 북한의 돈줄을 죄는 한편 선박 추적을 통해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핵을 포기하라는 메시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처럼 실천 없이 약속만으로 당근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포괄적 패키지에 관한 말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무게가 실려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일단 몰아치는 형국이다.

그러나 북한도 녹록지 않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이미 전략적으로 핵보유국을 선택했고, 미국 등과의 협상에서 핵무기프로그램을 협상대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서로 마주 달리며 누가 먼저 피하는지를 겨루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팽팽하다. 자칫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통일이 오늘 올 것같이 호들갑을 떨며 퍼주기만 했던 정부도 마뜩잖았지만 원칙만 앞세우고 대치를 이어가는 현 정부도 마냥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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