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혁범]‘정치 실종’ 한나라당 유감

  • 입력 2009년 7월 27일 02시 57분


갈등과 타협은 정치의 요체다.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는 갈등과 분열을 나쁘게 바라본다. 그런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한국 언론 및 엘리트그룹은 즉각 국민통합이나 화합이라는 단어를 외치며 섣부른 ‘치료’를 제시하려는 욕망을 쉽게 드러낸다. 각기 다른 정체성, 이해관계, 가치관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은 삶의 일부다.

갈등 상황마다 파열음 키워

국론이 분열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국민 모두가, 즉 5000만 명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파시즘이다. 하지만 정치란 불가피한 갈등과 분열을 현실로 수용하고 큰 테두리 안에서 조율하며 그것이 폭력적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타협을 끊임없이 이끌어내는 일이다. 갈등과 분열에서 타협으로, 그리고 타협에서 다시 갈등으로 가는 순환이 없다면 그것은 정치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숨 막히는 세계임에 틀림없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불협화음을 내며 그 모습을 드러낸 계파정치는 어떨까? 벌써부터 특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의원들이 일찌감치 줄을 서고 대권주자 간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모습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책, 노선, 철학, 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그저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배타적인 계파가 생겨나고 그에 대한 충성심이 공천 잣대가 되는 것은 안타깝다. ‘주공’과 ‘가신’은 한국정치에서 정말 사라진 것일까? 지도자가 ‘오너(owner)’가 되고 의원들의 자율적 판단이나 크로스보팅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은 당 내외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더 개혁적인 젊은 의원 중심의 목소리와 ‘쇄신위’의 평범한 제안마저 벌써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나라당의 행태는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용산 참사에서 미디어관계법 처리, 쌍용자동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언론 방송에 관련된 법안의 일방적 처리를 ‘성공’으로 자축하고 ‘마음 편하게’ 휴가를 떠나겠다는 발상은 과연 대다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일까? 또한 청와대와 여당의 갑작스러운 ‘민생’ 담론은 그동안 이들이 부자와 기득권층에 대해 보여준 태도와 대조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쇼’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구체적인 제도와 법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민생과 정치를 구분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치는 바로 민생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과 타협의 장이기 때문이다.

정책 개발-당내 민주화 낙제점

한나라당의 이념적 색채도 마찬가지다. 다수는 당의 입장을 중도 혹은 우파 보수주의나 자유주의로 규정하는 편이다. 원래 보수는 큰 문제가 없는 한 기존의 상태와 전통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 예로 원래대로의 강의 줄기나 주변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의지가 다른 정당에 비해 더 강해야 하지 않을까? 한나라당이 진정한 보수라면 ‘4대강 살리기’가 실제로는 ‘4대강 죽이기’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곳곳에서 출몰하는 것은 제5공화국의 권위주의와 1960년대 및 70년대에 보였던 개발독재형 반공적 극우주의의 변형된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재집권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선진화’라는 애매한 수사를 빼고는 미래에 대한 비전 및 철학, 이념적 유연성, 실용성 있는 대안적 정책 개발, 당내 민주주의 향상 그리고 일관성 있는 보수주의적 입장 견지 등의 차원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모습은 F학점에 가깝다. 이런 식으로는 정당이 공중분해만 되지 않아도 다행이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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