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수미-김혜자 씨의 일화
김 씨가 우울증 등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금전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을 때다. 수십 년 사업을 한 남편은 어디서 1억 원도 구해오지 못했고, 돈 많은 친척도 모르는 체했다. 김 씨는 지인들에게 몇백만 원씩 꾸어 임시변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김혜자 씨가 자기를 꾸짖으며 말했다고 한다.
“‘너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만 원씩 꾸지 말고, 필요한 액수가 얼마나 되니?’ 하셨다. 언니는 화장품 케이스에서 통장을 꺼내시며 ‘이게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 나면 그때 주든가’ 하셨다. 나는 염치없이 통장 잔고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모든 은행 문제를 해결했다. 언니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렇게 못한다.”
그 대신 김 씨는 각오가 있다. ‘얼마 전 언니가 아프리카에 가신다고 하기에 나는 언니가 혹시 납치되면 내가 가서 포로교환하자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만약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나는 무조건 간다. 꼭 가고야 만다.’
두 사람의 사연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내 개인적인 체험과도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 이사를 하면서 급전을 마련하느라 큰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에서 강남 아파트로 옮기면서 살던 집을 처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이사하느라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으나 그래도 2억여 원이 부족했다. 이삿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지만 해결 방법은 없었다. 친한 친구나 지인들은 많았지만 평소 돈거래가 없었기에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결국 독한 마음을 먹고 여남은 명에게 전화를 걸어 1인당 몇천만 원씩 급전을 빌려 잔금을 해결했다. 돈을 빌려 준 사람들에겐 “이자는 없다. 돈은 먼저 살던 집이 팔려야 갚을 수 있다”고 했으니 사실상 앵벌이 수준이었던 셈이다. 남들은 “그만해도 잘 살아온 인생”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빌린 돈은 석 달이 지나서야 갚았다.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돼준다면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불의의 사형장에서/‘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힘겨워한다. 지금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구제 법률의 통과나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에 앞서 생계비나 아이들 등록금 또는 치료비 같은 것들일 것이다. 김혜자 씨가 김수미 씨에게 ‘그 사람’이 되어 주었듯이 우리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 ‘그 사람’이 되어 준다면 우리들 고단한 삶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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