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입학사정관제 관련 발언이 교육현장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통령은 27일 “좋은 대학들이 내년도 입시부터 논술 없이 입학사정을 통해 뽑고, 농어촌에서 지역 분담을 해서 또 뽑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임기 말쯤 가면 상당한 대학들이 100% 가까운 입학사정을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입학사정관제로 모두 뽑게 하겠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오후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100%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아 달라”고 신중론을 펴면서 일이 더 커졌다. 교과부가 청와대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교과부는 “신입생을 모두 입학사정관제로 뽑으라는 것이 아니고 최종 목표를 강조한 말”이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24일에는 충북 괴산고를 찾아 “과외 받고 성적 좋은 사람만 좋은 대학을 가는 시대를 마감하겠다” “논술 없이 면접만으로 대학 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기숙형고 기숙사비를 10만 원 이하로 받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최근 이 대통령의 교육 관련 발언들을 보면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누군가가 너무 ‘환상’을 심어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적만 보지 않고 학생의 다양한 특성과 잠재력을 발굴해 입학 기회를 준다는 제도의 취지 자체를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교육에 대해 구체적인 것까지 언급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자율과 경쟁’에 역행하고 대학에 간섭하는 것처럼 비친다. 참여정부 때보다 더 규제가 심하다는 말도 나온다.
올해 47개 선도대학에서 전체 모집정원의 6%에 해당하는 2만695명을 선발하고, 교과부는 ‘당근’으로 대학에 6억∼19억 원씩 모두 236억 원을 나눠줄 예정이다. 대학 간 경쟁이 심해져 어떤 대학은 입학사정관제 선발인원 발표 당일 경쟁 대학의 선발 비율을 보고 급히 수치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원 사이에서는 정부 기대와는 다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막상 대학 요강을 들여다보면 결국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톡톡 튀는 스펙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한 학부모는 “참여정부 때는 논술, 수능, 내신 세 가지를 다 해야 한다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도 있었다”며 “지금은 너무 막막해 사정관(査定官)이 아니라 사정관(死定官)이란 말이 돌고 있다”고 푸념했다.
입학사정관제가 만병통치약처럼 보이지만 학부모는 입시제도가 자꾸 바뀌면 불안해지고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된다. 교육은 답답하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대학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