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기석]영월 COPD 계기로 국가차원 예방관리를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강원 영월군 시멘트 공장 인근 지역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로, 발병률이 전국 평균의 2배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보도됐다. 주민들이 병을 얻은 이유가 시멘트 공장과 광산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정인데, 다행히 환경부가 20억 원가량의 긴급 예산을 편성해 영월군 시멘트 공장 주변 지역의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다니 명확한 원인이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 뉴스를 접한 사람 중에는 그렇게 많은 주민이 병을 얻는 동안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환자 자신이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지 의아할 수 있겠지만 사실 지방 주민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에 비해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어렵다. 정기적인 관리가 안 되니 병이 생긴지도, 깊어지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 즉 COPD란 병명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해도 초기에는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는 데다 증세가 기침, 해소, 객담 등 다른 노인성 호흡기 질환과 유사해 병세가 깊어지는 과정을 깨닫지 못했을 수 있다.

COPD는 어려운 이름만큼이나 질병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낮고, 정부 차원의 관심 또한 부족하다. 흔히 이 병은 우리나라 45세 이상 성인의 17%가량이 환자로 조사되고 있지만 높은 유병률과는 달리 증세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COPD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네 번째로 많은 사망원인이 되는 질환이다. 2020년에는 사망원인 3위가 예상될 정도로 심각성이 크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도 나이가 들어 폐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을 자연스러운 노화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병을 키우다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COPD는 자각증세가 거의 없으므로 증세를 느낀다는 사실은 병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임을 의미한다. 해답은 조기검진밖에는 없다.

COPD는 완치가 어려워 고혈압, 당뇨 등의 질환과 함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다른 만성질환과 달리 COPD는 생존의 기본이 되는 ‘숨쉬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져 다른 신체 활동이 급격히 제한되므로 사회적인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증상이 심한 사람은 호흡곤란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혼자 이를 닦지 못하거나 신발 끈조차 스스로 맬 수 없을 정도이다. 급기야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지 못할 정도로 삶의 질도 떨어진다.

COPD는 단순히 영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공기 오염이 심한 곳에서 거주하는 도시생활자나 흡연자 모두가 잠재 환자일 수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병을 예방하기 힘들 뿐 아니라 초기 자각증상이 없어 예방관리 차원에서의 정기 검진 및 조기 검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COPD는 증상이 경미한 초기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할 경우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으며 생활하면서 생기는 숨이 차는 증상을 경감할 수 있어 조기 검진 및 조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혈압, 당뇨병처럼 COPD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높이고 지역의 보건소 등 의료기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검진하고 관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COPD는 간단한 폐 기능 검사만으로 조기 검진이 용이하니 정부 차원의 홍보 및 지원이 필요하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국민의 기대수명이 매년 연장되는 현 시점에서 COPD와 같은 만성질환은 사회비용 경감 차원에서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예방관리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번 영월 사건을 계기로 관련 제도를 조속히 보완하기 바란다. 국민의 건강은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회 문제로 발전될 수 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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