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뿐만 아니라 매체 정책과 국정홍보기능을 맡은 문화장관으로서 그 일은 피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유 장관은 ‘MB 정부의 선전부장’ 등 갖은 비난을 들었지만 흔들림 없이 마무리했다. 연극배우 출신이어서 행정 수행 능력이나 정치 역량이 모자랄 것이라는 우려도 현장을 뛰어다니며 말끔히 씻어냈다. 산하기관의 한 관계자는 “(장관이) 밑바닥부터 훑고 다니며 실제적인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 2기를 맞아 개각설이 나오는 요즘, 유 장관은 1년 반 동안 추진해 온 문화예술정책의 결실을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는 최근 문화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해와 올해에 추진해 온 정책의 효과가 내년부터 나타날 것”이라며 “아직 문화부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좌우파 간 갈등 때문에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유 장관은 그동안 문화 지원 사업 구조 개편, 포괄적 콘텐츠 진흥 정책 수립 등 다양한 정책을 현장에 옮겼다. 지원의 선택과 집중, 함께 누리는 문화의 일상화와 소외계층을 위한 맞춤형 문화 복지 확대 등을 추진했고 지적재산권 감시 대상국 탈피와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국내 콘텐츠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도 듣는다.
유 장관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한 것은 이런 사업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 액션 플랜을 점검하는 프로펠러가 더 가동되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유 장관은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했다.
유 장관의 말대로 준비한 정책들은 조만간 실적을 보이겠지만,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꿈을 문화로 형상화하고 확산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서민 행보를 서두르고 재래시장을 찾아다니지만 왜 그런지 ‘오래된 뉴스’ 같다. 이 대통령이 달변도 아니어서 꿈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나서는 참모도 드물다.
이 대통령은 최근 녹색 성장,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는 6월 초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녹색성장전시관에서 아시아 각국 정상들에게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기술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것이 우리의 꿈”이라며 “녹색성장을 아시아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높은 신분의 도덕적 의무나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자주 언급한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내정을 철회할 때도 이 말을 했고 재산을 기부해 청계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런 게 현 정부의 꿈이라면 그 메시지를 문화로 확산하는 일은 문화장관의 몫이다. 더구나 우리 역사에서도 신라 화랑, 조선 의병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문화산업은 ‘녹색산업’이기도 하다.
개각을 앞두고 유 장관에 대해 서울시장 출마설 등 정치적 해석이 나돈다. 그럴 때마다 유 장관은 “진정성을 몰라준다”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유 장관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유인촌 표’ 문화 정책을 넘어 현 정부의 꿈을 대한민국의 비전으로 만드는 일을 가다듬어야 한다. 정치인은 실적을 탐내지만 진정한 문화장관은 꿈을 탐내기 때문이다. 꿈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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