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현지]기업형-동네 슈퍼 공존방법 찾아내야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기업형 슈퍼마켓(SSM) 개점을 둘러싼 대기업과 영세상인 간 갈등이 심상치 않다. SSM은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대형 할인점 추가 출점이 어렵게 된 이후 핵심 사업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분야지만 이번에 단단히 제동이 걸렸다.

SSM 점포 개설 허가를 막아달라는 사업조정신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이 문제는 대기업과 일부 지역의 소규모 슈퍼 간 상권 다툼의 범주를 이미 벗어났다. 지난달 31일에는 서울시서점조합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쇼핑몰에 개장할 교보문고를 상대로 사업조정신청을 냈다. 대기업, 중소·영세상인 간 갈등이 서점 안경점 꽃집 주유소 등 다른 생활밀착형 업종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같은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대형 유통업체의 진출에 별다른 규제를 두지 않는 반면 북유럽 국가에서는 허가제, 등록제 등으로 대기업 진출을 규제하는 곳들도 있다.

시장경제 원리대로라면 SSM의 동네 상권 진출을 막기는 힘들다. 상인은 다양한 상품을 싼값에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고, 소비자는 각자 취향대로 상품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에서는 주민 600명이 ‘SSM 입점을 원한다’는 내용의 서명을 구청에 보냈다. 여권에서는 SSM을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발의할 예정이지만, 시장경제에 반하는 이런 정책들이 경제구조를 왜곡할 수 있다는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유통선진화를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경제논리만을 앞세워 기존 상인들이 일시에 몰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다. 비록 가야 할 길이라 할지라도 완급을 조절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아내 그 과정에서 빚어질 사회구성원들의 피해를 극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정희 한국유통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물류 유통의 일부만 대기업이 하는 ‘임의독립 가맹점’ 등 대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SSM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김진경 시인이 쓴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라는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감자 수확 철이 됐을 때 어른들은 일부러 대충대충 감자를 캤다. 잔 알은 그냥 내버려 둔다. 어른들의 수확이 끝나면 그 다음은 아이들의 몫이다.’

SSM 문제도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공생’이 가능한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풀라고 국민은 세금을 내 엘리트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다.

김현지 산업부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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