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사승]‘베끼기 함정’에 빠진 미디어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SBS ‘스타킹’의 베끼기로 소동이 크지만 베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 잘되는 것 그대로 베끼기만 해도 최소한의 매출은 보장된다. 베끼기를 나무라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미디어산업에서는 특히 심각하다. 창조적 생산에 기반을 두는 창의산업(creative industry)이기 때문이다. 창의가 고갈되면 곤욕을 치를 것이 뻔한 이 짓을 감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올해 안으로 전국방송 2, 3개를 허가한단다. 못해도 1000명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 일차적 전략목표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창의적 생산능력을 갖춘 인력을 적기에 공급하지 않으면 늘어난 채널은 오히려 독이 된다. 베끼기는 작은 부작용에 불과하다. 최소공배수 전략이라는 묘방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종합편성채널이 10개로 늘어나도 시장에서 잘 팔리는 품목으로만 몰려가면 다양성이라는 정책적 명분은 한순간에 깨어진다. 일은 이제부터다. 창의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아야 다양성이라는 목적을 얻을 수 있다.

뉴스든 드라마든 미디어상품의 가치는 기자 PD 배우 작가 등 종사자의 창의적 노동력에 달려 있다. 창의적 노동은 사실 아주 골치 아픈 종류의 노동이다. 개인적 자질, 즉 경험 선입견 취향이나 전문가적 인식을 바탕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이다. 때문에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자율성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생산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해야 하는 미디어기업은 일정 수준으로 이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수시로 일어난다. 자율성을 어디까지 수용하는가 하는 일은 답도 없는 골치 아픈 문제인 셈이다.

제살 깎아먹는 ‘최소공배수 전략’

또 다른 곤란은 시장의 변덕이다. 미디어상품은 경험을 통해 가치를 평가하는 경험재다. 역시 창의성 때문이다. 상품에 스며든 창의성은 써봐야 안다. 언제는 좋았지만 다른 때는 나쁘다고 느낄 수 있다. 정형화된 소비패턴이 없고 시장수요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창의적 노동이 충분히 깔리지 않을 경우 시장의 환대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요소 때문에 창의적 노동의 가치는 극단적이다. 차별적 창의성과 비차별적 창의성에 대한 대접은 확연히 엇갈린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대체가능성이 높은 경우의 가치는 아주 낮다. 반면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배타적 차별성을 창출하는 노동은 상상할 수 없는 평가를 얻어낼 수 있다. 스타의 가치는 이런 논리에 따른 것이다.

창의적 노동의 차별성은 생산결과물인 창의 상품을 통해 평가받는다. 비슷한 상품은 비슷한 창의성을 투입한 결과다. 같은 출입처, 같은 취재원, 같은 취재시간, 같은 마감시간 등 생산양식의 유사성은 생산결과의 차별성을 없애버린다. 비슷한 뉴스, 비슷한 드라마, 비슷한 오락프로그램은 생산방식의 동질성, 표준화 때문에 초래된다. 베끼기나 최소공배수 전략에 의한 상품의 가치는 당연히 최악이다.

창의적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따라서 차별적이고 독자적인 생산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시장 전체의 다양성은 자연히 높아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차별적 독자적 생산방식의 개발은 쉽지 않다. 사람이 만드니 사람이 독자적이어야 하는데 말처럼 간단치 않다. 더욱이 이 시장에 들어가려는 새로운 노동력은 새로운 생산방식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산기술을 터득하는 일조차 어렵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정부가 미디어의 다양성을 기대한다면 창의적 노동력의 양성을 근본에서부터 꼼꼼하게 생각해야 한다. 8학군 기자 논란을 돌아보라. 보도국 기자들의 색깔이 한쪽으로 쏠리면 뉴스의 다양성은 물 건너간다. 제작국, 아나운서실도 마찬가지다.

각계 각층의 창의적 인재 키워야

최근 영국 정부는 ‘야망의 족쇄풀기(Unleashing Aspirations)’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엘리트 중심의 사회시스템에 돈 없는 사람도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언론을 대표적 엘리트집단으로 지목했다. ‘캐치 22’라는 그룹이 기자 인턴십 지원운동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8세에서 30세 사이의 저소득층 젊은이가 기자 경험을 갖도록 언론학교를 열어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인턴으로 연결해준다. 이코노미스트 등 15개 언론사가 파트너십을 맺어 인턴을 받아들인다. 중산층의 전유물이 된 언론의 다양성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캐치 22’란 어느 하나의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다음 일로 나아갈 수 없는 딜레마를 말한다. 돈이 없어 인턴을 못하고 인턴을 못해 기자가 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현상은 ‘캐치 22’의 함정에 갇힌 때문이다. 창의적 노동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창의적 노동력이 없고, 이것이 없으면 창의 산업의 다양성은 불가능해진다. 창의 산업의 ‘캐치 22’ 딜레마를 사전 예방할 대책이 필요하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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