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구섭]나로호, 조용히 쏘아 올려야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6분


우리가 만든 우주로켓 나로호(KSLV-1)의 발사가 무기한 연기됐다. 기술적인 세부 요인과 발사 당일 날씨에 따라 일정이 확정되겠지만 나로호 발사를 성공시키면 우리는 자체적으로 위성을 쏘아 올리는 열 번째 국가가 된다.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가 새롭게 우주분야 기술경쟁의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는 셈이다. 우주기술 선진국과 함께 경쟁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이다.

우주개발에는 수많은 이익이 따른다. 경제적으로는 이동통신이나 인터넷의 활성화로 상업용 우주개발이 확대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우주공간의 중요성은 1991년의 걸프전쟁 이래 점점 더 커졌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 간에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주변국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 우주발사장을 신설 또는 확충하고 인공위성을 넘어선 우주탐사 계획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우리의 나로호 발사계획과 이에 대한 주변국의 반응은 이념의 틀을 넘어 국가이익에 따라 협력과 견제를 반복하는 21세기 국제정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나로호 1단 발사체의 액체 엔진기술은 러시아에서 도입했다. 반면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과 일본은 한국으로의 관련 기술 이전을 꺼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냉전기에 적대국이었던 나라로부터 발사체의 핵심기술을 도움 받았다는 사실은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위성로켓 발사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은 ‘힘(power)’을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국제관계에서 우주개발은 위성, 발사체, 발사장을 모두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에 따라 급(級)을 달리한다. 미국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분리처럼, 이 세 가지 ‘힘’을 보유한 국가만이 소수의 정예그룹을 이뤄 활동한다. 이들 메이저리그 국가는 다른 마이너리그 국가가 자신들만의 리그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꺼린다. 한국은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몇 안 되는 국내 전문인력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 우주개발의 메이저리그에 동참할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만 우주로켓의 발사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주변국이 가질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나로호 발사를 둘러싸고 위성로켓 기술을 군사적으로 전용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이용할 수 있다거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주변국 일각에서 들린다. 이런 부정적 여론이 국제적으로 확산된다면 북한마저 이를 악용할 수 있다. 나로호의 발사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용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메이저리그 진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국가, 북한의 악용 가능성, 그리고 아직은 순수한 국내 기술로만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를 고려할 때 적극적인 대외홍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내적으로도 위성로켓 발사의 흥분에 도취되어 군사적 전용 문제를 섣불리 언급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나로호 발사는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의 새로운 장을 펼치는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므로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 2018년 순수한 우리 기술로만 쏘아 올릴 예정인 KSLV-II, 2020년의 달 탐사 궤도선 발사, 2025년의 달 탐사선 개발이 성공할 때까지 국제정치의 변화와 흐름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우리의 기술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김구섭 한국국방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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