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원화가치 회복세’ 너무 겁낼 것 없다

  • 입력 2009년 8월 5일 19시 15분


우리 외환시장은 요즘 ‘달러 풍년’이다. 4년 만에 다시 ‘바이 코리아(Buy Korea)’에 나선 외국인들은 연일 한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어제까지 16일 연속 외국인 주식 순매입이 이어졌다. 상반기 217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도 달러 공급을 늘렸다. 불과 몇 달 전 정부, 기업, 금융회사 할 것 없이 달러를 구하려고 필사적이었던 게 사실이었나 싶을 정도다.

달러가 넘치면서 원화가치와 주가는 동반 상승세다. 3월 초 달러당 157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220원대로 낮아졌다. 원화가치의 빠른 회복세다.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촉발한 글로벌 경제위기 충격으로 같은 해 10월 938선까지 추락했던 코스피는 작년 8월 수준인 1,560선 안팎으로 올랐다.

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지난달 27일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세가 아시아 경제회복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면서 “한국정부 당국자들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다”는 칼럼을 블룸버그에 썼다. 모자를 벗을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이번 위기 대처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과 정부가 보여준 역량과 실적은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하나 따지면 미흡한 부분이 많고 원화가치 약세와 재정지출 확대의 도움도 컸다. 하지만 강성 노동계와 정쟁에 몰입한 정치권이 허구한 날 경제의 발목을 잡는 나라에서 금융, 실물, 고용 분야의 이 정도 성과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산업계 등 일각에서는 원화가치 회복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수출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선전(善戰)을 가능케 했던 원화 약세 효과의 ‘약발’이 줄어든다는 걱정이다. 그런 점을 무시하긴 어렵지만 ‘그늘’만 과장할 일은 아니다.

지금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인 작년 10월 초 수준이다. 2007년 말의 달러당 938원대는 물론이고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지난해 9월 12일의 1109원대보다도 높다. 더 거슬러 올라가 외환위기 이전에는 800원대의 원화가치 강세 상황이었다. 달러당 1100원 안팎으로 환율이 움직인다고 큰일 날 것처럼 말하기보다는 유연한 대응이 중요하다.

더구나 달러는 최근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서도 일제히 약세다. 이런 통화들에 대한 원화가치는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 2007년 말과 비교하면 1위안=128원대이던 것이 최근엔 180원대로, 100엔=833원대이던 것이 1290원대로 환율이 높아졌다.

환율 움직임에 따른 명암은 경제 주체별로 크게 엇갈린다. 기업의 관점 못지않게 소비자 관점, 국민경제 관점이라는 균형 잡힌 시각과 전체 경제 상황을 고려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 돈의 가치가 올라가면 수출의 가격경쟁력은 낮아지지만 해외에서의 실질 구매력이 높아지고 최근 다시 값이 오르는 원유(原油) 등의 수입 물가를 억제하는 순기능도 적지 않다.

외환당국과 언론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원화가치 상승의 부작용을 과장하는 일부 목소리에 휘둘려 섣불리 외환시장에 개입하거나 이를 주문하지 않는 게 좋겠다. 경제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환율은 시장의 자율적 흐름에 맡기는 것이 후유증을 줄이는 길이다. 아직은 원화 강세를 너무 겁낼 때가 아니다. 기업들도 원화 약세 말고는 경쟁력을 창출할 능력이 없다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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