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성경]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연기 이후

  • 입력 2009년 8월 6일 02시 57분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이슈에 관한 공론화를 두고 우려와 추측이 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방안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하에 결정하겠다는 2004년 12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의 의결은 공론화 논의의 출발점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은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변경 발표문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처리 방침을 결정하기로 하였다”고 확인한다.

다양한 의견 들으려는 시도 무산

원자력전문가, 시민단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너지산업전문위원회의 연구팀과 국가에너지위원회-갈등관리전문위원회의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태스크포스는 2007년 2월과 2008년 4월 각각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에 관한 연구보고서와 권고보고서를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지식경제부는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출범을 확정한다.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영국이 공론화에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서도, 정권의 선호가 그러해서도 아니다. 우리의 공론화 결정은 시대적 요구와 치열한 고민, 여기에 전문성과 사명감이 더하여 이뤄낸 결과다. 그런데 2009년 8월 출범 일정을 또 연기했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이슈는 복잡하고 어렵다. 본질적으로 기술적 미래불확실성, 정치적 가치 다양성, 외교안보적 국제사회 신뢰성, 경제적 분배다중성, 사회문화적 이해관계 다원성, 역사적 차원의 미래세대 책임성을 품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주장은 일리(一理)가 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구리(九理)를 갖는다.

공론화는 모르는 내용을 물어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아는 내용을 이야기하며 자기주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공론화에 참여하는 일은 기본과 원칙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공론화의 목표는 합의나 정책결정이 아니다. 단 하나의 입장 도출이나 입장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핵심이다. 정보와 지식, 그리고 자유로운 논의의 장(場)을 제공하고 의견 형성과 교환을 독려함으로써 간극을 좁혀가는 것이 공론화의 목표다. 내재된 혹은 발현된 갈등을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최선의 정책 결정과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전환할 힘을 공론화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 일정의 연기 자체는 쟁점이 아닐 수 있다. 경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 안전성 논란, 한미 원자력협력 협정과 맞물린 핵 주권 논의, 관련 행정 및 법체계의 재정립 논쟁, 온실가스 국가감축 목표 선정 등 연계 정책결정의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시의적절한 판단일 수 있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초점을 둔 공공성의 과시나 관련 시설의 입지 선정에만 관심을 집중했다면 더더욱 용기 있는 선택이다. 그런데 이는 어떻게 해서든 정부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소망에서 비롯된 짐작일 뿐이다.

책임감 있는 기구 만들 기회 되길

적절한 시점에 가장 적합한 틀과 내용으로 공론장을 열고자 하는 실천의지에 대한 당당한 설명을 기대한다. 차제에 정부 부처 간 깊은 논의를 통해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춘 공론화 기구를 정비할 수 있다. 다양한 처리, 처분 방식에 대한 기술, 경제 등 다각적 차원의 정직한 검토를 진행할 수 있다. 왜, 무엇을, 어떻게, 언제 공론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정부의 결정이 자신감 결여나 시대 역행이란 오명을 털어내고 정당한 가치와 건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조성경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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