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N호텔에서는 한 차례 소동이 일었다. 이날 오후 호텔 내 모든 컴퓨터가 동시에 다운되면서 업무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전산시스템을 복구하자 호텔 내 모든 프린터에서 한 문서가 동시에 출력됐다.
“고객 정보를 유출하겠다!”
협박 문서였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범인은 더욱 대담해졌다. 범인은 “누구도 나를 잡을 수 없다. 호텔에 투숙했던 각국 대사, 국내 정관계 주요인사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파일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메일을 호텔 측에 보내기도 했다. 알고 보니 범인은 이 호텔에 근무하는 전산실장이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에서 구조조정당할 것을 우려해 고객 정보를 유포하겠다며 임원진을 협박한 혐의로 이모 씨(35)를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N호텔이 전산망 통합작업을 시작하자 해고당할 것을 우려해 ‘전산망 통합작업에 비리가 있으니 조사하라’는 내용의 메일을 임원진에 보내는 등 5월 28일부터 7월 27일까지 총 15차례에 걸쳐 호텔 측에 협박 메일을 보냈다.
이 씨는 평소 직장 동료들의 PC를 고쳐주는 척하면서 몰래 컴퓨터에 원격 프로그램을 깔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호텔 내 모든 컴퓨터를 자기 마음대로 작동시키고 정지시킬 수 있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