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가난의 대물림’ 끊어줄 기부와 장학금

  • 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경기 용인의 서전농원 김병호 대표가 3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KAIST에 기부했다. 평생에 걸쳐 지독하게 일하고 자린고비처럼 절약해 이룬 재산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는 그의 얼굴은 유난히 맑아 보였다. 그는 ‘버는 것은 기술이요,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가 ‘예술처럼’ 돈을 쓰는 데 가족도 주저 없이 동의했다. KAIST에는 김 대표에 앞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300억 원, 재미사업가 박병준 회장이 1000만 달러(약 125억 원), 원로 한의학자 류근철 박사가 578억 원을 기부했다. 이 나라 과학기술 역군을 기르려는 투자의 행렬이다.

작년 연세대에 1억 원을 기부했던 한 할머니는 이달 3일 학교를 다시 찾아와 검정 비닐봉지에서 3000만 원을 꺼내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번에도 이름을 안 밝히고 버스를 타고 떠났다. 전북 김제의 왕재철 할아버지는 2007년 이후 매년 7월 김제시를 방문해 장학금으로 200만 원씩 내놓는다. 텃밭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어 번 돈과 자녀에게 받은 용돈을 아껴 마련한 장학금이다.

아름다운 기부만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주기엔 벅차다. 최근 경기침체 속에서 소득계층 간 교육비 격차가 더 벌어졌다. 1분기(1∼3월) 중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 이상인 가구는 교육비 지출을 늘린 반면 300만 원 미만인 가구는 줄였다. 가정형편상 수업료를 못낸 고교생 수가 작년 이후 부쩍 늘었고, 학업을 중단한 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소년도 크게 중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취약계층 청소년에 대한 교육 지원은 정부 몫이다. 교육복지는 나눠주기식 복지와는 달리 소득양극화 개선에도 효율적이다. 내년 농어촌 지역에서 운영할 기숙형 고교의 재정충원 계획을 잘 다듬어 차질 없이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를 정부가 과감히 채택했듯이 교육복지 확충에 여야가 협조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장학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저소득층 교육자금 지원을 위한 꿈나래통장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은 4만여 명의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생계안정-학습지원-자립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각 시도가 프로그램의 성패 요인을 공유해 더 효율적인 방안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 청소년이 거리를 헤매지 않도록 전문 인력과 예산을 배정해 취업교육을 시키는 일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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