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동용승]北, 南근로자 치외법권 보장을

  • 입력 2009년 8월 17일 03시 02분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가 북한에 억류된 지 136일 만에 풀려났다. 앞서 북한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 미국 여기자 2명을 풀어줬고, 이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평양으로 불렀다. 미국과 북한 간 관계 진전을 예상하거나 남북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치 북한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유화 제스처를 쓰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 공이 한국과 미국 정부로 넘어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아마도 북한이 기대했던 내용이 아닌가 싶다.

공은 아직도 북한쪽 코트에

하지만 공은 여전히 북한에 남겨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밝혔다. 취임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내용을 더 구체화시켰다. 이 대통령은 핵 문제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의 군축까지도 제안했다. 핵심은 돌아가지 말고 어려운 것부터 풀자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대북정책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북한과의 접촉면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북한사회가 변화하고 남북 간 신뢰가 구축돼 어려운 문제도 풀어낼 수 있게 된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실제로 남북교류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 씨 억류사건을 계기로 남북한 교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명과 재산상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남북교류협력 시스템의 전면적인 보완작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개성을 포함해 북한에 체류하는 우리 근로자들의 치외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공권력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우리 공무원을 추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기왕에 만들어진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의 기능을 확대 개편하여 교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협의, 해결할 수 있는 남북한 상설기구를 개성은 물론 서울과 평양에 설치해야 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 직불 실시도 시급하다. 이들 북한 근로자의 소득수준이 높아져야 인력 조달과 숙소 공급 문제 등도 순차적으로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거래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은행 간 거래시스템을 구축하고, 북한과 특정 물자를 거래하기 위해 제3국을 경유해 선금을 지불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다. 만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현금이 북한으로 들어간다. 개성공단에서 임금이 매월 수백만 달러씩 현금으로 지급된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재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교류와 협력은 이제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교류시스템 전면 손질해야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지만 정작 북한이 핵문제를 일으키면서 우리 민족끼리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소멸시켰다. 북한은 비핵화의 실질적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북한이 동북아지역 협력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한 남북한의 협력은 물론 동북아지역의 협력도 요원할 뿐이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남북한이 직접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힘을 모아 도와줄 용의가 있다. 이제 북한은 남북대화에 응해야 한다. 더는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북한에 남아있는 공을 다시 한국이나 국제사회로 넘길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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