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아픔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기자도 글을 쓰면서 가끔 이런 마음을 느낀다. 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기자의 이름을 치면 ‘순수했던 장환수 기자는 어디에’란 글이 담긴 블로그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기자가 2003년에 쓴 ‘순수했던 김병현 선수는 어디에’란 칼럼을 한 독자가 패러디한 글이다. 당시 기자는 폭행 사건에 휘말린 김병현에 대한 아쉬움의 마음을 글로 썼다. 그러나 이게 어떤 독자에겐 분노를 일으키고, 기자를 대놓고 비난하는 부메랑이 될 줄은 몰랐다.(그리고 기자를 비난한 그 패러디 글이 왜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당 포털의 기자 관련 문서 중 맨 위에 있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보다 앞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누리꾼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다. 야구 대표팀의 카지노 사건 때였다. 일부 선수가 카지노를 드나들었다는 기사는 본보의 묘사가 가장 구체적이었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은 기자도 카지노를 출입했다고 흥분했다. 이에 기자는 인터넷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간 건 사실이고 잘못은 인정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매일 국가의 명예가 걸린 결전을 치르고 있는 반면 기자는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는 아니지 않느냐. 기자의 잘못을 탓하는 것은 상사인 부장이 할 몫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한 사발 끼얹은 격이었다. 조회 건수는 눈 깜짝할 새에 수십만 히트에 이르렀고, 댓글은 수천 개가 달렸으며, 폭탄 메일 수백 개가 쇄도했다.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후로도 여러 번의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피부로 느꼈다. 특히 요즘처럼 독자의 반응이 인터넷을 통해 즉각 나올 때는 더욱 아프다. 기자처럼 체육 기자인 경우에는 크게 다툴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정은 오히려 정반대다. 체육 기사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접하고, 뚜렷하게 자신의 의견을 낸다. 따라서 스타 선수에 대한 험담은 금기다. 누가 옳고 그르고는 별개의 문제다. 대다수는 공감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체육 기자야말로 정말 보람 있는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의 금메달을 굳이 예로 들 필요도 없다. 아이로니컬하지만 기자는 필화사건을 통해 우리 생활에 있어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기자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체육 기자만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21세기가 되면 체육 기자가 미국에서처럼 주목받는 기자가 될 것이란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직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아무려면 어떻나. 각본 없는 드라마가 속출하고, 그 속에서 꿈틀대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현장의 얘기들을 매일 접할 수만 있다면.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