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60>

  • 입력 2009년 8월 17일 13시 58분


"교, 교수님!"

석범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떨렸다. 그러나 볼테르는 자신의 분노를 연이어 폭발시키느라 석범의 감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로봇이 뭔지도 모르는 새끼들이 위험하네 멍청하네 지껄인다니까. 로봇보다 위험하고 로봇보다 멍청한 게 뭔지 알아? 그건 바로 인간이야! 로봇 범죄 중 90퍼센트 이상이 그 로봇을 구입한 인간의 지랄 같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왔……."

볼테르가 말을 맺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글라슈트의 오른팔이 천천히 올라갔던 것이다. 그제야 볼테르와 석범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이럽니까? 이상한 거 맞죠? 위험한 거 맞죠?"

"가만, 그 입 좀 다무시오. 이건 내가 욕을 했기 때문이오. 은 검사, 당신에게 퍼부은 욕을 글라슈트가 착각한 게요."

"착각이라고 했습니까? 로봇도 '착각'을 합니까? 금시초문입니다."

볼테르가 석범을 무시하고 글라슈트를 불렀다.

"글라슈트! 나야. 너의 주인, 최 볼테르."

글라슈트가 볼테르를 향해 돌아섰다. 볼테르는 어린 아이 달래듯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었다.

"네게 욕한 게 아냐. 저기 은석범 검사와 언쟁을 잠시 했을 뿐이지. 다시 눈을 감고 '수면 모드'로 돌아가. 곧 정비가 끝나. <보노보> 사장 찰스를 비롯한 VVIP들이 우승 로봇인 널 보러 곧 올 거야. 멋진 일이지?"

'찰스'가 언급되는 순간 글라슈트가 볼테르를 향해 걸음을 뗐다.

"교수님!"

석범도 따라 걸으며 다급하게 볼테르를 불렀다.

"가만, 꼼짝 말고 가만 있으시오."

글라슈트와 볼테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3미터 2미터 1미터!

주먹을 뻗거나 발길질을 하면 피할 수 없을 만큼 밀착되었다. 글라슈트가 양팔을 천천히 들고 양손을 활짝 펴 항아리라도 안듯 둥근 원을 만들었다. 볼테르가 미소 지으며 그 원 안으로 쏙 들어가자, 글라슈트가 양손을 겹치면서 원을 좁혀 볼테르를 안았다.

"어떻소? 귀엽지 않습니까?"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포옹'으로 미리 설정했던 것이다. 석범도 딱딱한 표정을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잖습니까. 닭살입니다, 정말!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런 짓을 합니까?"

"많아야 한 번! 아무리 칭찬을 해도 다가서지 않는 날도 많습니다. 글라슈트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만 포옹을 하니까요."

"그럼 배틀원에서 우승한 직후에도 포옹을 나눴겠군요?"

"아닙니다. 팀원들의 기분은 최고였지만 글라슈트는 무뚝뚝하게 그냥 서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로봇의 마음은 다르니까요."

그때 글라슈트의 고개가 천천히 석범 쪽으로 꺾였다. 시선이 마주쳤다. 석범은 글라슈트의 눈에서 비웃음과 살기(殺氣)를 읽어냈다. 행복에 젖은 눈이 아니었다.

"어어, 글라슈트, 왜 이래? 멈춰. 글라슈트! 흐윽!"

볼테르가 다시 '멈춰!'란 명령어를 뱉었다. 그러나 글라슈트는 원을 좁히기 위해 양팔을 엇갈려 당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안에 낀 볼테르는 곧 가슴이 눌려 숨이 막혀왔다. 1초만 더 지나도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를 상황이었다.

석범이 뛰어올라 강철구두로 글라슈트의 턱을 후려 찬 후 글라슈트의 맞잡은 손목을 내리쳤다. 글라슈트의 몸이 기우뚱 흔들리면서 두 팔이 떨어졌다. 그 순간 석범이 재빨리 볼테르를 끄집어냈다.

"멈춰! 글라슈트 멈추라고!"

볼테르는 포기하지 않고 명령을 반복했다. 석범이 손바닥으로 볼테르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 당신 명령 따윈 듣지 않아. 당하고도 몰라?"

"아냐 아냐."

볼테르가 고개 젓는 사이, 글라슈트가 두 사람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쿵쿵쿵쿵 바닥이 울렸다. 석범은 재빨리 볼테르를 전시된 로봇 속으로 밀어 넘어뜨린 후 뒤로 공중제비를 한 번 두 번 세 번 돌았다. 글라슈트가 양팔로 석범을 끌어안으려 들자, 네 번째로 공중제비를 도는 척하다가 로봇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간 후 강철구두로 기계 부품과 소형 컴퓨터칩이 어지러운 등을 찍었다. 뿌직 빠찌직! 부품들이 손상된 탓인지 글라슈트가 스텝이 엉키면서 왼 무릎을 꿇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들이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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