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YS-DJ의 진정한 화해

  • 입력 2009년 8월 17일 19시 55분


두 사람은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올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 맨 앞줄에 90분 동안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끝내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김대중(DJ) 김영삼(YS)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를 이만큼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도 드물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화해했다고 한다. YS가 DJ를 병문안한 뒤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답한 것을 ‘YS-DJ 극적 화해’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갈등이나 적대 관계의 사람들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사과와 용서라는 절차가 필요한 법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 아닌가. DJ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그 가족을 위로한 뒤 나온 YS의 일방적 화해 선언에는 그런 절차나 내용이 모두 생략됐다. 이 때문에 ‘그게 무슨 화해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두 사람의 갈등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 중에는 화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때로는 경쟁자로, 때로는 협력자로 평생을 살아온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이 됐다. 갈등은 두 사람의 정치인생 내내 이어졌지만 특히 DJ 집권 이후 두드러졌다. 이 시기에는 YS가 DJ를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비판의 대상은 DJ의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북정책, 외환위기 책임론, 노벨 평화상 수상부터 심지어 YS 아들에 대한 사면 문제까지 다양했다.

YS가 DJ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배경에는 이념적 요인이 깔려 있다. YS 자신이 하려다 불발에 그친 남북 정상회담을 DJ가 성사시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것도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외환위기 책임을 혼자 뒤집어쓴 것에 특히 YS는 불만이 많았다. DJ가 자신의 정책 추진에 사사건건 발을 걸어 외환위기의 일부 책임이 있는데도 YS만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DJ는 외환위기 극복의 공로자가 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진짜 화해하려면 서로가 상대에게 한 행동을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하고 오해를 푸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DJ의 병세가 위중한 만큼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리기도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두 사람의 화해는 역사의 평가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방적이지만 YS의 화해 선언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전직 대통령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안 보게 된 것만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 더구나 ‘긍정의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다는데 각박한 정치판에 도움이 되면 됐지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화해를 더욱 의미 있게 하려면 두 사람의 추종자들이 나설 필요가 있다. DJ가 회복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DJ의 복심(腹心), 정치적 제자와 아들을 자임하는 정치인들이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YS와 DJ는 지역주의 정치의 수혜자란 점을 부정할 수 없다. 3김 정치가 심화시킨 지역주의는 한국정치의 암적 요인이다. 난마처럼 얽힌 현실 정치의 갈등이 지역주의와 무관치 않다. 지역주의가 사라져야만 YS-DJ 화해의 의미도 커진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YS와 DJ 양 진영의 정치인들이 자기희생을 전제로 나선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