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선우]분기-반기 실적도 아닌 ‘이상한 통계’

  • 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1990년대 말 주력 수출상품이던 반도체의 무역적자 폭이 유난히 컸던 때가 있었다. 이때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을 억제해(원화 가치는 상승) 무역적자 규모가 매우 컸다고 한다. 당시 정부는 고민 끝에 ‘반도체를 제외한 한국의 무역 통계’라는 희한한 자료를 발표했다. 반도체만 제외하면 무역수지가 소폭이지만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는 11일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수출액 기준으로 세계 10위에 올랐다는 자료를, 23일에는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이 2000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는 보고서를 각각 발표했다. 글로벌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경부의 자료에는 좀 생뚱맞은 대목이 있다. 수출 통계는 조사대상 기간이 1∼4월 기준이고, FDI 통계는 1∼7월 기준으로 각각 4개월, 7개월 동안의 실적이다. 이는 분기(3개월)도 아니고 반기(6개월)도 아닌 기간이다. 지경부는 통상적으로 수출입통계는 월별로, FDI 실적은 분기별로 발표해 왔다. FDI 실적 발표와 관련해 지경부 당국자는 “다른 나라에 대한 투자는 감소하고 있는데, 한국은 투자 유치 실적이 좋아서 참고자료 격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가나 기업은 분기, 반기 또는 연간으로 각종 실적을 집계하거나 통계를 작성한다. 이를 통해 국가별 기업별 비교가 가능하다. 같은 기간 공평한 잣대로 평가하는 일종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분기도 아니고 반기도 아닌 4개월, 7개월의 통계 수치로 자료를 낸 셈이다.

만약 발표대로 수출과 FDI 실적 상승 추세가 지속되는 것이라면 2∼3개월 기다렸다가 반기 또는 분기 실적을 내면 된다. 4개월 치나 7개월 치 통계를 봤을 때는 한국의 실적이 좋은데 반기나 분기 또는 연간으로 봤을 때 실적이 좋지 않다면 이는 통계적 착시 효과를 노린 발표일 뿐이다. 역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료이기도 하다. 후대는 분기, 반기, 연간 통계를 비교하지 4개월 치나 7개월 치 통계를 분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황에서도 한국의 수출이 늘고 대한(對韓)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 모두가 노력한 결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사 기간을 희한하게 잡은 자료가 정부의 조급증 때문이라면 문제다. 지금이 1990년대 말도 아니고,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김선우 산업부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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