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방학이 다 가기 전에 더 알차게 놀자, 한 가지씩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그로부터 며칠, 우리 가족은 거의 홍길동을 방불케 할 만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시작은 강원 인제, 만해 축제 중에 열린 세미나 참석이었다. 나는 두 딸아이를 대동하고 갔다. 엄마가 평소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과 안면이 있는지 알리고 싶은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한국문학과 종교적 영성’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거물급 연사의 발표를 들으며 두 아이는 졸다 깨다 하면서도 대단히 엄숙한 태도를 유지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훌륭한 대학의 훌륭한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엄마를 아이들은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선택과제 포기하고 알차게 놀아
밤길을 내처 달려 도착한 곳은 봉명이라는 작은 항구였다. 파도소리 요란한 방파제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머리카락 날리며 사진을 팡팡 찍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돌아오는 내내 아이들은 조잘조잘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다음 날의 행선지는 용인의 놀이 시설. 엄마와 함께 꼭 놀이 공원에 가고 싶다는 막내의 소원 때문이었다. 오전 6시 출발, 8시 입장, 오후 8시 퇴장하기까지 인공 파도를 타고 괴성을 질러보고 긴 줄의 끝에서 기다리다 핫도그를 먹고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기구에서 또 한번 고함을 지르고…. 흠뻑 젖고 거의 탈진할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공원 안의 모든 시설을 살뜰히 이용했다.
다음 날, 새로 생긴 고속도로를 가보자는 남편의 뜻에 따라 갑작스러운 춘천행이 이뤄졌다. 소양댐의 장대한 물 구경, 막국수, 메밀전병과 닭갈비로 이어진 여정 역시 자정이 겨워서야 끝이 났다. 또 다음 날은 바다에 가고 싶다는 큰딸의 뜻을 좇아 서해안의 해수욕장엘 갔다. 노는 일도 이력이 붙는지 뜨거운 햇살도 끈끈한 모래바람도 한껏 신이 난 우리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늘 아래에서 남편은 곤한 잠을 자고 아이들은 개펄의 진흙을 날라다 모래 위에 길게 누운 인어 상을 만들고는 지치지도 않고 작은 조개껍데기를 모아 인어의 꼬리에, 등에 아름다운 비늘을 붙였다. 파라솔 만 원, 고무 튜브 만 원, 도합 이만 원의 알뜰한 일정은 긴 낙조가 서해를 물들일 무렵 비로소 끝이 났다.
개학 전날, 눈을 비비며 밀린 일기를 쓰면서도 막내는 마냥 즐거운 눈치였다. 간신히 독후감 과제를 마치고 잠이 든 아이의 방의 불을 꺼주고 나오면서 나 역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행 학습이 당연 학습이 된 이즈음의 풍조로 보자면 방학 내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바빴던, 학원이 어떤 곳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아이의 새 학기를 걱정해야 마땅하지만 나는 그런 염려는 하지 않는다. 아이는? 선택 과제를 멋지게 해온 아이가 많을 테지만 그런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좀 부지런해지자고 결심한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겠으나 그러지 않는다 해서 나무랄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학기 중에도, 방학 중에도 아이의 일상을 관리하며 시간별로 아이를 여러 과목의 학원으로 실어 나르거나 버스에 태워 보내는 엄마가 보자면 나는 참 태평하고도 한심한 사람일 터이지만.
개학 전날 밤엔 걱정대신 뿌듯함
속독학원에 보낸다는 아이 친구 엄마와의 대화 한 토막. “그런 델 왜 보내는가”라는 내 말에 그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읽어야 할 것이 갈수록 많잖아요. 빨리 읽는 훈련을 해야죠.” 빨리 읽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는 말을, 느리더라도, 거듭 읽어서라도 의미를 파악하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하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가 저 나름의 판단과 가치를 찾아낸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이에게도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었다. 과제를 하지 않더라도 즐거운 아이, 즐거운 엄마가 되기까지 나 역시 긴 세월이 걸렸으니.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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