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에서 단일 정당 사상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돌풍은 자민당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관료 의존형 정치, 잇따른 부패, 고질적 파벌정치로 민심을 잃어 최악의 참패를 했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에서 살아났던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다시 어려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자민당 정권의 정관(政官) 유착구조의 폐해를 비판하고 ‘생활 및 복지 중시 정치’와 낭비성 예산 절감을 약속하며 ‘정권을 갈아보자’는 선거혁명을 이루어냈다.
하토야마 차기 총리는 미국 의존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중시, 특히 한일(韓日)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공식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올해 5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뒤 선택한 첫 해외 방문국은 한국이었다.
한일 관계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종전보다 호전됐다. 일본 하토야마 정권에서 한층 성숙된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두 나라 정부와 민간 부문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독도 영유권 갈등 등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변수가 여전해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불필요한 마찰로 인국(隣國·이웃나라)들을 자극하지 않고 신뢰를 높여나가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일본 민주당은 한일·미일(美日) 자유무역협정(FTA)에 긍정적이다. 한일 FTA는 두 나라에서 모두 적극 추진론과 신중론이 엇갈린다. 일본 정부가 한국 경제의 고질적 대일 무역역조를 줄이는 데 협조한다면 한일 FTA 협상 재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북(對北) 정책에서 민주당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북핵 불용(不容)’은 한국과 미국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일본 정권 교체 후에도 한미일 등 국제사회의 협력은 필수이다.
한일관계 ‘역사의 앙금’ 터는 발전 기대
국내정책에서는 아동수당 신설, 공립고교생 수업료 무상화(無償化), 지방분권 가속화, 공무원 낙하산 인사 금지, 내수와 중소기업 중시 경제정책을 내세웠다.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재원을 생각하지 않고 쏟아낸 선심성 공약이 많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민당 모델’로 급성장한 일본 경제가 민주당 집권 후 어떻게 달라질지도 관심거리다.
한일 양국은 불행한 역사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깝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의 정권교체가 두 나라 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질적 발전으로 승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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