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불침항모’ 자민당이 침몰하던 날

  • 입력 2009년 9월 2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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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저녁. 자민당 총재인 아소 다로 총리는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마지막 지원유세에 나섰다.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도 같은 곳을 찾았다. 이케부쿠로가 있는 도쿄 10선거구는 4년 전인 2005년 총선 때 자민당 압승의 상징적 선거구였다.

아소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을 강조했다. “풍요롭고 안전한 일본을 만든 것은 자민당이었다. 일본을 지키는 것은 자민당, 여러분의 삶을 지키는 것도 자민당이다.” 그는 “정치는 도박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바람을 견제했다.

8·30 총선의 뚜껑을 열어보니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돌풍이었고 태풍이었고 쓰나미였다. 당선 보증수표였던 자민당의 거물들이 민주당 약체 후보에게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16선 의원인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는 ‘46년 만의 전직 총리 첫 낙선’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자민당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를 이끌며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은 지역구에서 패한 뒤 비례대표로 겨우 의원직을 유지했다.

일본 언론사 인터넷판의 개표 속보는 일본 정치의 지각변동과 선거혁명을 실감케 했다. 투표가 끝나고 4시간 21분이 지난 8월 31일 0시 21분 민주당은 이미 전체 중의원 의석 480석 중 301석을 확보했다. 종전 300석이었던 단일정당 사상 최다의석을 돌파하는 순간이었다. 반면 이 시간 자민당은 110석을 간신히 넘겼다. 최종 개표 결과 자민당은 119석을 얻어 308석인 민주당의 38.6%에 그쳤다.

1955년 좌파세력에 맞서 보수우파가 결집한 자민당은 ‘불침항모(不沈航母·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로 불렸다. 창당 후 단 한번도 제1당의 자리를 내놓지 않은 사실상 ‘만년 집권당’이었다. 자민당·관료·재계의 ‘철(鐵)의 삼각구조’는 폐해도 많았지만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자민당이 창당 13년밖에 안된 민주당에 역사적 참패를 했다. 일각에서는 태평양전쟁 당시 '불침함 환상'을 낳게 했던 전함(戰艦) 야먀토와 무사시의 침몰에 비유한다.

일본의 정권교체를 가능케 한 결정적 원동력은 민주당에 대한 기대라기보다는 자민당 정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민주당은 포퓰리즘에 가까운 공약을 쏟아냈다. 정책의 실효성이나 정합성(整合性)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어쨌든 이번에는 정권을 갈아보자”는 쪽을 택했다. ‘패장(敗將)’인 아소 총리도 “오랫동안 자민당에 대해 쌓인 불신과 불만이 소용돌이쳤다”고 시인했다.

이른바 ‘55년 체제’의 제1야당이었던 급진좌파성향의 사회당과 달리 민주당은 대체로 중도우파 노선이다. 이런 변화는 유권자들의 선택에서 심리적 부담을 줄였다.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 지지자 중 30%가 이번에 민주당을 찍었다. 정책노선은 ‘확실한 왼쪽’인 공산당도 불법폭력세력을 비호하거나 거짓선동을 일삼는 일은 요즘 일본에서 꿈도 꾸지 못한다.

가이후 전 총리는 낙선 직후 기자들에게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말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뜻과 달리 오늘의 결과를 보게 됐다”고 했다. 자민당의 침몰은 영원한 강자(强者)란 없으며, 집권세력이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거나 자체 혁신에 소홀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평범하고 당연한 이런 진리는 일본에만 통하는 것도, 정치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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