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MBA) 와튼스쿨의 시작은 학기가 열리는 9월이 아니라 8월 초부터 이뤄지는 ‘프리 텀(Pre-Term)’이다. 학교에서는 프리 텀 기간 학생들의 교류 및 팀워크 강화를 위해 5, 6명씩 ‘학습 팀(learning team)’을 짜준다. 이때 인종, 성별, 국적, 과거 경력이 다른 학생들을 한 팀에 넣어 서로 배우도록 배려한다. 팀에 속한 학생들은 1년간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듣고, 프로젝트도 함께 수행한다.
프리 텀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정량분석에 기반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훈련하고, MBA 졸업 후 필요한 리더십을 개발하는 것이다.
○ 정량적 사고가 왜 중요한가
프리 텀의 첫 번째 과정은 바로 MPT(Math Proficiency Test)다. 이는 수학 개념을 실제 비즈니스 문제에 적용해 해답을 찾아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시험이다. 로그함수의 미적분, 한계비용 함수의 개념, 실제 기업에서 어떻게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는지를 한꺼번에 묻는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당황한다. 프리 텀과 실제 수업을 들어보면 수학, 나아가서는 정량적 사고가 와튼스쿨에서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학교 측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합리적 의사결정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여긴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각자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수업을 준비한다. 그리고 어떤 토론에서든 학생들에게 본인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정량적 수치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향후 학생들이 실전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정량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해 정확히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시뮬레이션으로 배우는 리더십
올해 프리 텀의 특징은 일주일간의 리더십 강의 및 시뮬레이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세계 최초로 상황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스스로 평가해보는 재미난 수업이다. 러닝 팀의 팀원들은 가상 회사의 회계, 재무, 인사관리(HR), 마케팅, 영업, 연구개발(R&D) 책임자 역할을 부여받으며 9년 동안 회사를 경영한다. 이 기간에 책임자 6명은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의사결정 연습을 한다.
여기에는 내년 경영 계획 수립, 채용 등 부서별 의사결정을 비롯해 신사업 진출 같은 전사적 의사결정도 한다. 이때 팀원들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지,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강도 높은 토론과 실습을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팀원들은 동료에 대해 엄격한 다면평가를 내린다.
필자의 러닝 팀은 뛰어난 영업력으로 미국의 한 재보험회사 부사장까지 지냈던 줄리아나, 미국 서부에서 제법 큰 규모의 가구업체를 운영하다 온 중국계 미국인 제임스, 태국 최고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회계사 난, 그리스 출신의 투자은행가 야니, 수학 천재인 인도계 투자은행가 아르티로 구성됐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팀원들이 역할을 분담할 때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생소한 분야를 서로 나서서 맡겠다고 한 점이었다. 필자가 한 친구에게 이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온 거지.” 이런 친구들과 앞으로 2년을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야말로 프리 텀이 필자에게 준 가장 큰 소득이다.
송원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 Class of 2011 wonsong@wharton.upen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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