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과 그의 형 태자 이건성이 권력다툼을 벌이자 위징은 이건성에게 이세민을 죽일 모책을 권한다. 이세민이 먼저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태자를 죽이고 위징을 잡아 질책한다. “너는 어째서 나를 죽이려 했느냐?” 사람들은 이제 위징이 죽게 되리라 생각했다. 위징은 오히려 기세등등 말한다. “내 말을 태자 건성께서 들었더라면 틀림없이 오늘 이런 화는 없었을 것이오!” 기백에 탄복한 황제 이세민은 그를 발탁해 정치의 득실을 논했다. 위징이 때마다 황제의 잘못을 질타하니 황제가 분노한 나머지 칼을 뽑아 그의 목을 치려해도 위징은 결코 뜻을 굽히거나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어느 날 황제는 위징에게 묻는다. “요즘 떳떳하게 의견을 말하는 자가 보이질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침묵하는 이유들이 저마다 다릅니다. 의지가 약한 자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곁에서 봉사한 적이 없는 자는 신뢰 없음을 두려워해 말을 못합니다. 지위에 연연하는 자는 섣불리 의견을 꺼냈다 지위를 잃을까 몸을 사려 침묵합니다.” 위징은 부하의 심리를 치밀히 분석하고 통치자의 맹점을 찌른다.
지금 우리 정치상황은 위징처럼 소신 있게 발언하는 대의의 정치인이 절실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라는 이름 아래 대통령과 6개 부처만 서울에 남기고 국무총리와 12개 부처 내려 보내 수도를 두 쪽으로 쪼개려 한다. 국토균형 발전을 위한 도시 운운하지만 20조 원을 투입해도 20년 동안 20만 인구가 살기조차 불가능하리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나라야 어찌되든 당선만 되면 그만이란 목적으로 표를 한 번 흔들어버린 결과다. 국가의 정체성과 통치력의 근본이 갈라지는 재앙에도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전전긍긍, 바른 말 하는 정치인 몇이나 있는가.
초대형 도시 간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상황에서 수도 분할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면 도쿄 베이징 상하이 주변국에 반사이익만 주게 될 것이다. 20세기에 지방분권을 추진하던 유럽의 많은 국가도 21세기 들어 대도시 경쟁력 강화를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다. 위징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대운하 건설하다 멸망한 수양제 고사를 들어 목숨 걸고 반대할 것이다. 위징이 세상을 뜨자 황제는 슬피 울며 탄식했다. “구리거울로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것을 거울삼으니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삼으니 가히 득실을 밝힐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이 세 거울로 나의 허물을 막아 왔는데, 위징이 세상을 떠나니 슬프다. 나의 거울을 잃고 말았다!”
오늘 한국정치의 당면 문제는 세종시만이 아니다. 더 거세지는 북핵문제, 미-북 대화, 일본 민주당 정권 탄생, 무섭게 달려오는 중국, 격변하는 세계지식산업전쟁. 이 긴박한 시점에 한국정치가 오직 선거에서 표를 목적으로 국가대사를 농단한다면 나라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대의를 갖고 크게 생각해 보자! 지방균형 발전이라는 목표를 세종시라는 방법이 아니면 달성하기 어려운가. 정부부처를 몇 개 내려 보내면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전체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대안은 정말 없는가. 미래를 보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이 아쉬운 시점이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