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일흔 잔치를 시작하다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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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인텔 CEO 배릿, 시골여관 주인으로 제2인생
“평생 속도에 매달린 삶, 이젠 느림의 미학 찾을것”

‘세계적인 대기업의 회장, 시골 농장의 여관 주인으로 제2 인생을 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을 퇴사한 크레이그 배릿 전 회장(70·사진)이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외딴 시골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새 도전에 나섰다고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17일 보도했다.

배릿 전 회장이 30여 년간 몸담았던 인텔을 떠난 것은 5월 20일. 인텔을 퇴사하고 그가 얻은 새 직함은 여관 주인(Innkeeper)이었다. 자신이 소유한 몬태나 주 목장인 ‘트리플 크리크 랜치’에 자리한 여관을 직접 운영키로 한 것이다. 배릿 전 회장은 “여기는 평생 일에만 매진하는 삶과는 반대된 인생을 찾아볼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속도경쟁에 치중하던 반도체사업가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농촌의 숙박업자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배릿 부부를 잘 아는 이들에겐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배릿 전 회장의 젊은 시절 꿈은 산림경비원이었다. 스탠퍼드대 입학 당시 산림학 과정이 없어 재료공학 전공을 선택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핀란드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부인 바버라 씨는 시골농장에서 자랐다. 바버라 씨는 남편 일을 도우면서 ‘우주 관광객’ 훈련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 부부는 1988년 처음 이 여관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근사한 자연과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받은 부부는 1993년 아예 목장을 인수했다. 인텔 회장 재임 때도 임원들을 자주 초대해 파티를 열곤 했다. 배릿 전 회장은 “우리가 처음 묵었을 때 느꼈던, 가족 품에 안긴 듯 편안하고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천에 따르면 배릿 전 회장의 ‘깜짝 변신’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편이다. 우선 투숙객 반응이 매우 좋다. 한 커플은 부탁도 안 했는데 자신의 차를 티끌 하나 없이 세차해둔 서비스에 감동받았다. 또 다른 커플은 2년 만에 묵었는데 자신들의 식습관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에 놀랐다. 배릿 전 회장이 인텔을 경영하던 노하우를 여관 운영에 잘 적용하고 있다는 게 직원과 투숙객들의 평가다. 배릿 전 회장은 “자신의 일에 애정과 열정을 가진 숙련된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여관이라고 해서 뻔한 시골 모텔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트리플 크리크 랜치는 1999년 배릿 전 회장이 인근 땅 2만5000에이커를 사들여 투숙객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미 레저업계에서 베스트 10 숙박시설로 뽑힌 적도 있다. 하룻밤 묵는 데 650∼2500달러(79만∼303만 원)가 드는 최고급 여관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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