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TV로 생중계되던 도중 들렸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조 윌슨 의원의 짧은 외침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영화관에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 같았다. 그는 이후에 자신의 행동이 우발적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하원의원이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분출하도록 놔두는 건 국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말했듯 지난해 여름 후 오바마에 대한 증오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 세라 페일린 후보는 백인 군중을 모아놓고 ‘진정한 미국’을 지키는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카터가 제기한 인종차별 문제에 백악관이 동조하고 나서지 않은 것은 옳다. 그 대신 우리는 지금 시급히 논의할 주제가 있다. 건강보험, 인종차별 등의 이슈 밑에 깔려 있는 대중의 분노에 대한 것이다.
요즘 워싱턴에 의해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소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대부분 오바마를 증오하지만, 그렇다고 공화당 기성세력도 좋아하지 않는다. 오바마 정부의 조세정책이 ‘사회주의적’이라며 시위를 벌였던 4월의 대규모 시위에서나 지난주 ‘워싱턴 행진’에서도 매케인 또는 부시를 위한 찬사는 없었다. 이 군중에게 진정한 영웅이 있다면 가장 탁월한 시위 선동가였던 폭스TV 토크쇼 진행자 글렌 벡(45)이었다.
이번 주 시사주간 타임은 벡을 커버인물로 내세웠다. 벡은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한 ‘제2의 러시 림보’는 아니다. 조금 다르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와 음모론이 뒤섞인 것이다. 그는 마약과 알코올 의존자였던 과거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자백함으로써, 마찬가지로 오류에 빠지기 쉬운 시청자들과 함께 유대감을 유지한다. 지난주 워싱턴 행진에 참가한 시위대도 오바마를 파시스트,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로 불렀고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에 비유했다. 벡은 이러한 군중의 감정을 포착해낼 줄 안다. 그는 고전적인 미국 우파 포퓰리즘의 대가였던 대공황시대의 코를린 신부나 1960년대의 조지 월러스와 비견된다.
그러나 지난 시대와 다르게, 벡의 부상은 공화당에 재난이 되고 있다. 공화당의 이미지가 추잡한 욕설과 기이한 서커스, 이민자 배척(윌슨의 오바마에 대한 분노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등으로 굳어진다면 미국이 더 젊어지고 다양화할수록 공화당은 인구학적인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벡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극단주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경제적 불평등은 언제든 뇌관이 될 수 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게 마련이다. 경기침체가 낳은 분노는 벡이 우파진영에 심어놓은 것처럼 좌파와 중도파의 포퓰리스트적인 선동에서도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다.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1주년을 맞아 월가에서 개혁을 다짐하는 연설을 했다. 오바마의 연설은 곧바로 잊혀졌다. 월가 개혁을 뒷받침할 만한 후속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벡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번 돈을 워싱턴이 훔쳐 게으른 가난뱅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바마가 이러한 인종주의자들의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에겐 오직 개혁된 정부가 얼마나 미국인의 삶을 실제로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한 일이며, 지난 대선 때 몇몇 공화당원과 심지어 인종차별주의자까지도 흔들리게 했던 오바마의 약속인 것이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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