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서 두 번째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받은 고려대 안암병원. 진료 단계별로 환자와 의사가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며 진료의 안정성이 입증돼야 JCI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JCI 인증을 받은 후 진료 과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17일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아 이비인후과 외래진료를 받아 보았다. 》
○ 환자의 권리를 알려주는 게 진료의 시작
진료를 접수할 때 간호사가 “환자는 정성을 다한 최선의 진료를 동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설명을 충분히 듣고 치료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등 ‘환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13개의 항목을 설명해줬다. 이어 진료에 필요한 검사를 받는 것에 동의하고, 병력과 같은 개인정보를 의료진이 공유하는 데 동의한다는 ‘일반 동의서’를 제출했다. 동의서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도 돼 있어 외국인 환자도 진료 전에 안내를 받는다.
본격적인 진료에 앞서 1차 문진을 받았다. 초진 의사는 귀가 어느 정도 아픈지 통증을 측정했다. 귓속이 헐고 아파서 이비인후과를 찾은 것이지만 의사는 혈압과 맥박, 체온까지 꼼꼼하게 측정했다. 일반적인 신체 상태에 대한 ‘점검’을 하는 것.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정해진 진료실 앞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대형 병원을 이용하다 보면 예약 시간에 맞춰 가도 진료가 지연돼 자신의 차례가 언제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고려대병원은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진료실 앞 모니터에 대기 환자의 수나 지연시간을 공개하고 있었다. 환자의 이름은 ‘우경*’으로 모니터에 떴다. 환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상학 이비인후과 교수와 마주앉았다. 먼저 이름과 생년월일로 환자 본인임을 확인하고 증상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만약 입원을 하게 되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팔찌를 찬다. 혈액이나 방사선 검사를 할 때마다 환자 본인임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매번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검사 결과가 바뀌거나 다른 환자를 수술하는 등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다.
중이염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이 병에 대한 설명서를 받았다. 이 교수는 “중이염이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귀에 침입해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지금 단계는 점막이 붓고 진물이 나는 ‘삼출기’에 해당한다”며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하루만 투여하면 나을 것 같다”며 치료법에 대해서도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추가 설명을 했다.
다음 진료 날짜를 예약하고 진료비를 낼 때는 집에 돌아가서 주의해야 할 점, 위급상황이 생기면 비상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 처방돼 있는 약의 성분이 무엇이며 약을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의사와 소통 활발, 진료에 믿음 가
외래진료를 받아보니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이 활발한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30분 대기에 3분 진료’라는 속설을 이 병원에서는 볼 수 없었다. 환자가 질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니 훨씬 안전하다는 믿음도 생겼다. 이 교수는 “JCI 인증은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며 “첨단 의료기기와 병상수를 갖추어도 안전한 의료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 환자를 위한 병원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툴 가완다 하버드대 의대 박사는 1월 ‘뉴잉글랜드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전 세계 8개 병원 총 7500건의 수술에서 환자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적용한 결과 사망률이 1.5%에서 0.8%로 절반이나 줄었고, 수술 후 합병증도 11%에서 7%로 줄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병원 측은 이 논문에 나온 내용대로 수술 환자와 입원 환자에 대해 더 꼼꼼하게 체크한다. 수술실에서는 마취 전 집도의,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가 모두 환자의 성명, 생년월일과 수술 부위를 확인한 후 서명을 해야 한다. 이전에는 수술 환자의 성명만 확인하고 마취에 들어갔기 때문에 환자나 수술 부위가 바뀌는 사고가 종종 있었다.
약물 투약 관리도 엄격해졌다. 약물 이름만 의무 기록에 남겼던 이전과 달리 약물의 구체적인 용량과 투여해야 하는 상황까지 명시돼 있어 약물의 투약 오류를 줄일 수 있다.
환자가 병원을 나선 후, 즉 퇴원한 후에도 관리를 하고 있었다. 환자가 거동이 불편하다면 집까지 이동할 수단을 제공하고, 집에 돌아가서 돌볼 사람이나 음식을 해 줄 사람은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퇴원 후에도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들을 연계해 준다.
JCI 인증을 계기로 고려대 안암병원은 외국인 환자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 환자 진료시설을 새로 늘리고, 외국인 전담 의료진도 구성할 방침이다. 치료 후 환자가 출국하고도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외 네트워크도 만들 방침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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