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중국 농촌의 미래’라는 지위를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최고 부자 마을이라는 장쑤(江蘇) 성 장인(江陰) 시 화시(華西) 촌이 그렇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29일 이 부자마을을 집중 소개했다.
○ 개혁개방의 상징
중국 상하이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화시에 들어서면 넓은 도로를 따라 붉은색 지붕을 인 유럽풍 최고급 빌라가 줄지어 서 있는 이국적인 모습에 방문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흡사 거부들의 별장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가정마다 마을에서 제공한 연면적 400∼600m²짜리 빌라 한 채와 최소 1대 이상의 외제 승용차를 갖고 있다. 현재 중국의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를 맴돌고 있는데 이 마을 주민들의 가구별 평균 자산은 무려 15만 달러(약 1억7900만 원)에 달한다. 이 외에도 주민보조금, 경로보조금, 학비보조금 등 각종 보조금을 풍족하게 받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촌이 주관해 주민 1000여 명을 단체로 공짜 대만 관광을 보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이 마을이 부자가 된 비결은 중국 증시에 상장된 최초의 자치단체 기업 ‘화시그룹’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강철, 직물, 관광 등 60여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이 그룹은 지난해만 모두 500억 위안(7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화시의 농민들을 노동자로, 화시그룹의 주주로 탈바꿈시킨 주역은 우런바오((吳仁寶·82) 전 당서기. 그는 척박하고 바위투성이 땅인 이곳에서는 농사로 부유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9년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비밀리에 금속공장을 운영했다.
이 공장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이 시작됐을 때 화시가 훨씬 빠른 성장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우 전 당서기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상관없이 우리는 잘살기를 원했다”면서 “공산주의에도 자본주의에도 장점은 있으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느 한쪽만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시의 성공을 따라 배우려고 해마다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 전체가 잘살아야
화시 촌 남쪽 입구에 들어서면 우 전 당서기의 좌우명이기도 한 구호가 걸려 있다. “혼자서 잘사는 것은 진정한 부유함이 아니다. 전체가 잘살아야 비로소 부유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선두주자인 이곳에 3만여 명에 달하는 외지인 노동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함께 잘살자는 구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원주민들은 고소득과 각종 보조금, 배당수입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몇백 위안의 월급이 고작이다. 외지 노동자인 류모 씨(27)는 “화시 촌 주민이 되고 싶지만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며 “그나마 직업을 얻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화시 촌 전문가 왕페이링 미국 조지아공대 교수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성장이 외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듯이 화시의 성공도 마찬가지”라면서 “화시는 중국 사회의 부익부빈익빈 현실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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