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최영일]악동 G-드래곤의 ‘사회적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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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일 12시 34분


일본 만화작가 아이 야자와의 '나나'라는 작품이 있다.
인디밴드 '블래스트'의 리드보컬인 나나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나나의 남자친구이자 블래스트 팀의 옛 베이스 주자인 렌은 '트렙네스트'라는 잘 나가는 밴드에서 스타뮤지션이 되어 있다.
이야기는 나나와 렌, 이 두 인물을 축으로 허덕이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블래스트 멤버들과,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트렙네스트의 멤버들의 삶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뮤지션 세계의 순정 드라마다. 이미 이 만화는 국내에도 많은 청소년 독자층을 확보했고, 심지어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속편까지 개봉하기도 한 초대형 히트작이기도 하다.
최근 제1집 정규앨범을 내고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한 가수, 타이틀곡 '허트브레이커'를 가요차트 최상위에 올리고 있는 최고의 아이돌인 G-드래곤
그의 뮤직 비디오나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만화 나나에서 렌이나 혹은 밴드 블래스트의 기타리스트인 노부라는 캐릭터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현실세계로 진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 마치 만화 속 캐릭터를 보는 듯한 G-드래곤
백색으로 눈부시게 탈색한 머리칼이 얼굴을 덮고, 가면 같은 페르조나로 포장한 무표정, 요즘 유행하는 '몸짱'과는 거리가 있는 가녀리면서도 기다란 팔과 다리를 극대화한 패션을 보노라면 영락없는 순정만화 캐릭터의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의 일본식 약어로 유명한 가상캐릭터를 따라 화장하고 옷 입는 놀이)'인 것이다.
G-드래곤은 그렇게 매혹적인 모습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부당한 아픔을 가슴 찢어지는 가사로 노래한다. 10대 청소년들이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셈이다.
만화든 대중음악이든 아이돌 스타가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얻고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문화 시장구조와 생리가 의도하고 바라는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왜 유독 G-드래곤이 사회적 문화현상으로 분석대상이 되어야 할까.
이미 2006년에 5인조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로 탑, 태양, 대성, 승리와 더불어 인기를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세상에 너를 소리쳐!"라는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주인공. 본명인 권지용의 이름을 응용한 G(지)-드래곤(용)은 멤버 중 '창조본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작사, 작곡, 노래, 댄스를 섭렵하면서 창조적 뮤지션의 꿈을 흔들림 없이 추구해왔다는 점에서다. 솔로로 데뷔한 G-드래곤이 사회현상의 요인으로 갖는 가치는 그에 대한 팬층이 10대나 20대를 넘어서 30, 40대 여성층까지 흡인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반적 아이돌스타의 사회적 영향력을 넘어서는 이 같은 현상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 그를 분석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누나부대의 동원력을 지닌 다른 비슷한 연배의 가수, 예를 들어 G-드래곤과 한 살 차이의 이승기는 반듯한 이미지와 예능 프로그램 활동을 통한 인간미를 어필하여 리얼리티 가수이자 연예인의 입지를 굳혔다. 이에 비해 G-드래곤은 철저히 TV, 뮤비, 무대 등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판타지 가수의 전략을 지닌다.
모든 연예인들이 이미지의 소비를 전제로 하지만 그 이미지는 리얼리티와 판타지로 구분되는 영역의 전략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에게 이승기가 '옆집 엄친아'라면 G-드래곤은 소녀에게나 아줌마에게나 마음 속 동경의 판타지 소년이다.
둘째, 30대 이상의 G-드래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에게서 1990년대 초중반 문화대통령이었던 서태지의 재림을 경험한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이들에게 서태지는 여전히 문화대통령이고, 폭넓은 팬들을 지녔지만 주력층은 역시 30, 40대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처지다. 90년대 초 자신의 꿈을 위해 남들이 다 가는 대학을 포기하고, 작사, 작곡, 노래, 안무를 거쳐 이미지를 관리하고, 프로듀싱까지 하는 서태지는 한국형 X-세대의 상징이 되었다.
21세기 아이돌은 20세기말의 문화대통령의 지위를 계승할 수 있을 것인가? G-드래곤에 대한 장기적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현재 아이돌 스타는 단순한 배우나 뮤지션이 아니다. 대중은 스타에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뛰어넘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엄청난 영향력과 막중한 책임을 함께 지운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앨범이 출시될 때 앨범표지 사진에서 왜색 논란이 일었고, 동방신기는 소속사와의 갈등이 법정소송까지 일으켰으며, 2PM의 재범은 무명시절 SNS 게시판에 올린 글로 인해 제 2의 유승범(스티브 유)으로 낙인찍혀 그룹 탈퇴와 출국으로 이어졌다. G-드래곤 역시 솔로 데뷔와 함께 인기몰이를 한 '하트브레이커'가 영국 유명가수의 곡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네티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최근 SM, JYP, YG라는 엔터테인먼트계의 메이저 3사가 모두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 배경에는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된 지식정보사회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소비자 감시가 강화되어 있다는 시대변화 상이 깔려 있다.
G-드래곤의 이번 앨범에는 'Gossip man'이라는 노래가 화제가 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G-드래곤을 'Gossip 드래곤'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한편 그는 듣는 음악을 보는 음악으로 전환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이 말은 G-드래곤이 뮤지컬적인 가수이며, 비주얼 이미지를 강력한 시너지로 발산하는 뮤지션이라는 표현의 강조일 뿐이다.
21세기 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대중적 이미지를 소비시키고 판타지를 창조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돌 스타, 그중에도 핵심에 서 있는 G-드래곤. 그도 이제 21살이다. 게다가 그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아니며, 앞으로도 대중문화의 소비구조와 가십의 험난한 길을 뚫고 달려야 한다. 안티 네티즌들이 그를 G-이무기라고 비아냥거릴 때 이는 비난만이 아닌 차가운 현실이기도 한 셈이다.
그저 묵고 묵어서 판타지 이면의 리얼리티를 이겨내며 성숙한 우리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최영일/문화평론가 vincent2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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