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봉쇄도 그들의 사랑은 못 막았다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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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지구 러브스토리 화제

화상맞선 통해 결혼 약속
당국서 국경통과 거부하자

약혼녀 1000km 돌고 돌아
목숨 걸고 땅굴 넘어 결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집트 접경 지역. 한 남자가 땅굴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벌써 1시간째다. 남자의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봉쇄된 가자지구의 지하경제를 떠받쳐온 생명선인 땅굴. 그가 기다리는 것은 생필품이 아니었다.

마침내 밀수꾼들 뒤로 한 젊은 여성이 기어 올라왔다. 이제 막 무덤에서라도 빠져나온 듯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남자는 여성의 손을 잡고는 와락 끌어안았다. 이 여성은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에서 목숨을 걸고 찾아온 약혼녀. 7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이스라엘의 국경 봉쇄를 뚫고 이뤄낸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상세하게 전했다.

모하메드 와르다 씨(26)와 메이 씨(23)의 사랑은 3개월 전 시작됐다. 난민캠프에 살던 모하메드 씨는 가족들 성화로 맞선을 봤다. 인터넷 화상카메라를 통해서였다.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요?” 여자의 첫 질문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렸다. 전화와 인터넷 화상채팅, e메일로 사랑을 키우다 결혼까지 약속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팔레스타인 강경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는 바람에 이스라엘이 2007년 6월부터 가자지구를 봉쇄했기 때문. 모하메드 씨는 ‘결혼하러 가야 한다’고 당국에 수차례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 남은 방법은 상대적으로 통행이 자유로운 메이 씨가 가자지구로 오는 것뿐. 모하메드 씨는 “상황을 설명하자 ‘내가 가겠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메이 씨는 서안지구 라말라를 떠나 택시를 타고 요르단으로 가, 다시 이집트로 거의 1000km를 날아갔다. 하지만 이집트 국경에서 가자지구까지 1∼2km가 진짜 고비였다.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로 넘어가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집트 당국은 매일 땅굴을 수색하고 이스라엘 공군도 수시로 땅굴 의심 지역에 공습을 해대기 때문이었다. 도중에 땅굴이 무너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올 들어 벌써 수십 명이 땅굴에서 목숨을 잃었다. 메이 씨는 “도중에 산 채로 묻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며 “땅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흙 때문에 눈을 감고 기었다. 한 시간이 넘었을까, 저 멀리서 빛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마침내 빛을 등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동화 속 이야기라면 여기에서 끝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전쟁과 내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가자지구에서 앞으로 두 사람은 수시로 생사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생계도 막막하다. 단칸방에 가구라곤 컴퓨터 책상과 소파 겸 침대로 쓰는 매트리스 하나뿐. 모하메드 씨는 아내를 데려오려 밀수꾼들에게 1500달러를 건네는 등 빚만 4000달러나 졌다. 실업률이 40%에 이르는 가자지구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한 달 수입은 25달러에 불과하다. 메이 씨는 “가장 힘든 것은 사랑하는 엄마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면서 “사랑은 잔인하다(Love is cruel)”며 눈물을 훔쳤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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