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창현]일자리 늘리려면 ‘복수노조’ 재고를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친 지 80년이 됐다. 당시 주가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0% 근처에서 완전고용 수준을 기록했던 미국의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후 정부 주도의 뉴딜정책 그리고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국면에서 군수물자 생산을 도맡으면서 미국은 회생할 수 있었다.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으로 되돌아간 시점이 1942년 여름이었으니 고용의 회복에 대략 13년이 걸린 셈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생계의 주요 수단이자 최고 복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최근 논의되는 복수노조 문제는 여러 가지 우려를 자아낸다. 노조는 강자로서의 사용자가 부당한 조치나 압력을 통해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할 때 이에 대항하여 약자로서의 근로자가 단결하여 자신의 권익을 지키려고 만든 단체이다. 특히 사용자의 힘이 강할수록, 그리고 부당한 조치를 남발할수록 노조의 역할은 커진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수위가 적정수준을 넘어서 지나치게 높아지고 부당하다고 할 만한 수준까지 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고용의 질도 중요하지만 고용의 양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용의 양이 늘어나야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가 증가한다.

그러나 노조는 주로 현직에 대한 고용의 질을 제고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고용의 양과 질이 같이 좋아지면 금상첨화이지만 대개는 반대인 경우가 많다. 질을 높이려면 재원이 들고 그로 인해 기업은 고용의 양을 늘리지 못한다. 따라서 노조가 고용의 질 제고에 치중할수록 국가 전체적인 근로정책은 고용의 양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복수노조는 부정적인 측면이 상당히 많은 제도이다. 노조별로 다양한 이슈를 개발하여 경쟁을 하면 결국 조합원의 복지수준에 대한 과도한 약속이 남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맞추느라 허리가 휠 것이다. 또 다수의 지지를 받는 노조와 협상을 해도 소수가 참여하는 노조를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과다한 협상비용과 기간으로 인해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된다. 현직노조원의 고용의 질을 제고하느라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복수노조 간의 경쟁,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과다한 협상비용으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진 사례가 꽤 있다. 노조가 2개, 3개 생기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에 고용이 될 수 있었을 수많은 인력의 새로운 일자리는 암묵적으로 사라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물론 누군가 나서서 특정 기업의 복수노조로 인해 피해를 보았노라고 주장을 하면 모르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복수노조로 인한 암묵적 피해자는 분명 있지만 구체적 피해자를 지정할 수는 없어서다.

일자리를 얻은 인력도 중요하지만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인력이야말로 국가가 더욱 신경을 써야 할 존재이다. 성경을 보면 목자는 우리에 있는 양을 두고 ‘길 잃은 양’을 찾아다닌다. 실업상태에 있는 인력은 ‘길 잃은 양’이다.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정부정책이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볼 때 복수노조는 지나치게 질에 치중하면서 양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제도이다. 일자리 창출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이 제도의 도입은 재고해야 한다. 이 기회에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도 경제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우리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정책이 될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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