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은 까까머리 고교 2학년이었고, 한 명은 무서운 카리스마를 지닌 젊은 감독이었다. 스승과 제자로 첫 만남을 가졌던 때가 1976년 가을. 그로부터 33년이 흐른 2009년, 그 두 사람은 최고의 무대 한국시리즈(KS)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으로 여유있게 KS를 준비해 온 KIA 조범현(49) 감독과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따돌리고 3년 연속 패권에 도전하는 SK 김성근(67) 감독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사제 대결’을 앞두고 있다.
둘은 조 감독이 충암고 2학년 때였던 1976년 감독과 선수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프로야구 OB에서도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쌓았다. 쌍방울과 삼성에서는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김 감독이 SK 사령탑으로 부임하기 전인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간 SK 지휘봉을 잡은 이가 조 감독이다. 김 감독이 SK 사령탑으로 간 2007년, 부임 첫 해 자신의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찌감치 팀을 정비해 놓은 ‘조범현의 힘’이 있었다는 평가도 나오는 등 둘은 30년 넘은 인연만큼 숱한 사연도 갖고 있다.
KS 개막을 하루 앞둔 15일 광주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양 감독은 서로를 치켜세우면서도 승리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90도로 머리 숙여 인사를 건네는 등 스승에 대해 깍듯한 예의를 갖춘 조 감독은 “고교시절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큰 무대에서 뵙게 돼 이번에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다”면서도 “타이거즈의 명가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12년 만에 타이거즈의 KS 우승을 이끌겠다는 굳은 각오를 내비쳤다.
김 감독 역시 따뜻한 덕담 속에서도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 감독은 “설마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지도자로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두산 김경문 감독도 제자라, 두 제자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데 승부의 세계라 나도 이겨야하니까 별 수 없었다”며 웃었다. 덧붙여 “조 감독은 어려서부터 하나에 몰두하고 악착같은 게 있어 뭔가 해내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그랬다”고 제자를 칭찬했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스승이 져버리면 안 되지 않느냐”면서 또 한번 챔피언 반지를 끼겠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KIA와 SK의 KS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KS 9전승 신화’를 자랑하는 KIA와 구단 사상 첫 KS 3연패의 대망을 꿈꾸는 SK의 외나무다리 대결은 두 감독의 인연까지 곁들여져 더 큰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최종 승자는 스승일까, 제자일까.
광주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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