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다문화 시대의 화두 ‘짬뽕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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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7일 02시 30분


◇차폰 잔폰 짬뽕/주영하 지음/300쪽·1만6000원·사계절

일본 규슈에는 ‘나가사키 잔폰’이란 음식이 있다. 한국에선 ‘나가사키 짬뽕’으로 부른다. 같은 짬뽕이지만 우리의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짬뽕과는 사뭇 다르다. 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나가사키 짬뽕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한국 짬뽕과는 어떤 관계일까’ ‘자장면처럼 한국에서 태어난 중국 음식일까’ 궁금해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 나가사키 잔폰은 1890년대 나가사키로 건너온 중국인 화교들이 만든 음식이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인사말인 차폰을 흉내 내어 이 음식을 나가사키 잔폰으로 불렀다.

1910년 한국이 국권을 상실하면서 한국에 살던 화교들은 일본에 살던 화교들과 동일한 정치적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 무렵 한국에서 만든 자장면이 나가사키 지역으로 넘어갔다. 그 대신 나가사키 잔폰이 한국에 들어왔다. 그 영향을 받아 한국의 중국식당에도 짬뽕과 우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짬뽕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화교들이 공생의 길을 걷고자 한 데서 나온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동아시아 음식문화사 연구에 매달려 온 저자가 내놓은 신작이다. 책의 맨 앞에 등장하는 짬뽕 얘기가 특히 흥미롭다. 한국의 짬뽕과 일본의 나가사키 잔폰의 분포지를 추적하면서 이 음식이 20세기 초 격동의 동아시아 근대사와 어떻게 맞물려 탄생했는지 살펴본 것이다. 짬뽕 이야기는 곧 음식의 사회사 문화사다. 음식 속에 담겨 있는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국가와 음식, 정치 경제와 음식의 관계, 음식의 변화 등에 대해 소개한다. 세계화와 한국 음식의 매운맛에 대한 얘기도 재미있다. 세계화는 전 세계를 단일한 식품산업 시스템으로 편입시켰다고 말한다. 한국 음식이 최근 들어 더 매워진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본다. 한국인이 소비하는 매운맛은 이제 고추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글로벌한 핫소스가 침투한 것이다. 맵지 않던 통닭이나 곱창에도 칠리페퍼를 위주로 한 핫소스가 들어간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음식은 늘 변하고 국경을 넘나든다는 사실. 민족음식에서 세계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비빔밥 역시 그런 사례다. 국경을 넘은 음식은 늘 현지화된다. 칭기즈칸도 그렇고 샤부샤부도 그렇다. 그래서 저자는 “기원이나 정통성에 과도하게 매달려 특정 음식의 국적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자”고 조언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민족과 국경을 넘어서는 다문화 혼종의 음식문화를 기대하자는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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