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7일)은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세계 100여 개국에서 ‘지구촌 빈곤퇴치, 이제는 행동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어서는 캠페인을 벌인다. 우리나라도 서울 남산공원에서 지구촌 빈곤퇴치를 위한 걷기 캠페인을 개최한다.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한국이 지구촌 빈곤퇴치에 동참하는 국가가 됐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중에서도 동티모르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작은 정성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동티모르는 21세기 첫 신생국가가 됐다. 2002년 5월 20일의 일이다. 손봉숙 전 국회의원이 유엔 파견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으며 수도인 딜리에서 5시간 떨어진 라우템 주의 유엔 행정담당관을 한국인 송혜란 씨가 맡았다. 우리 정부는 라우템 주에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다. 상록수부대는 라우템 주의 치안 유지뿐만 아니라 도로나 성당 건축 등 주민을 위한 사업으로 인기를 끌었다. 라우템 주의 로스팔로스 시를 가로지르는 중심도로의 이름이 ‘한국친구의 거리’인 걸 보면 한국에 대한 주민의 호감과 기대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2년 전 동티모르를 방문했을 때 라우템 주 소모초 마을에는 돼지 염소 개 닭이 채소밭이며 들판을 마구 밟고 다녔다. 낡은 승합차가 하루 한 번 지나가는데 기껏 사람만 태울 수 있어 농사지은 호박이며 카사바 운송이 어려워 제때 내다팔기 힘들었다. 물을 길으러 4km를 걸어가야 하니 모두들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 4학년부터는 1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야 했고, 3학년까지는 교실이 하나뿐인 소모초 분교에서 3부제 수업을 했다.
지금 그 자리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으로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만들고 공동우물을 파주었다. 소모초 분교에 교실 하나를 증축하고 마을 청년이 방과 후 학습을 돕는다. 또 중고 트럭을 구입해 통학을 돕고 주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 팔고 생필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도록 했다. 트럭 이용자에게서는 교통비를 받아 ‘소모초 행복기금’을 만들었다. 이 기금은 주민회의를 거쳐 주민의 숙원사업에 사용하는데, 첫 번째 사업으로 낡은 마을성당을 개보수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모은 기금으로 성당을 말끔하게 고쳤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해했다.
200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민주주의포럼에서 동티모르 대통령인 주제 라모스오르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라모스오르타는 조국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녔다. 독립운동가 출신 라모스오르타 대통령이 지금 어떤 심정으로 나라를 이끌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우리는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난한 나라, 빈곤퇴치를 향한 지도자의 의지가 강한 나라, 국민이 스스로 노력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 한국이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도움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유엔은 2015년까지 세계 빈곤퇴치를 위해 8개의 개발목표를 세웠다. 우리 정부는 2년 전부터 해외여행객에게 1000원씩의 빈곤퇴치기여금을 부과해서 모은 기금을 아프리카 최빈국의 보건의료사업에 지원한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원조자금도 조금씩 늘었다. 한국의 지원으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빈곤을 퇴치한 성공사례를 만들어낸다면 지구촌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지구촌 빈곤퇴치, 이제는 행동으로!’라는 구호를 힘껏 외칠 뿐만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촌에 희망의 손길을 펼치는 결단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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