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다이어리] 영웅들도 부러워하는 ‘가을잔치 함성’

  • 스포츠동아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7시 30분


20일 대전광역시에서는 제90회 전국체육대회가 개막했습니다. ‘여자헤라클레스’ 장미란(26·고양시청)의 기록도전, ‘국민마라토너’ 이봉주(29·삼성전자)의 은퇴레이스 등 수많은 올림픽 영웅들의 이야기가 시작됐지요.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올림픽이후에도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베이징올림픽 남자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24·강원도청)의 21일 용상기록(206kg)은 오히려 올림픽 때(203kg)보다 좋더군요.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사재혁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009한국시리즈에서 팔꿈치 통증을 참고 던지는 채병용(27·SK)처럼 그도 이를 악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국체전의 관중석은 민둥산처럼 ‘듬성듬성’ 이었습니다. ‘투혼의 이야기’는 있지만 들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전국체전 취재를 마치고 22일 잠실구장으로 돌아오자 하루 만에 딴 세상이 열립니다. 3만관중의 함성이 불러오는 청각적 효과. 노란색·빨간색 막대풍선의 시각적 효과. 잠실은 실로 공감각적인 웅장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선수들의 작은 가십 하나도 팬들 사이를 떠돕니다.

10일 사재혁과 장미란은 두산과 SK의 플레이오프 3차전을 관람하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습니다. SK 김성근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장미란의 영향으로 SK팬이 된 사재혁은 “사실 나는 반짝 스타인데, 야구장에 오면 야구선수들이 너무 부럽다”며 웃습니다. 엄청난 환호성 속에 묻혀보고 싶다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들의 로망이랍니다.

10월 초, 용인 삼성휴먼센터에서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21·삼성전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재활훈련을 마치고 잠시 외출했다 온다던 그의 손에는 야구배트가 들려있었습니다. 소문난 야구팬인 그는 “양준혁, 진갑용 등 함께 재활을 하며 친해진 등 삼성 라이온즈 형들에게 (사인을) 받은 것”이라며 웃더군요.

60억분의 1의 유전자를 가진 올림픽금메달리스트들도 프로야구스타들 앞에서는 한 명의 팬이 됩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고액연봉과 팬들의 환호. 과연 지금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SK와 KIA 선수들은 자신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그라운드에서 흙먼지 가득한 유니폼으로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를요. 신경전을 펼치기보다 정정당당하게 그라운드에 더 힘껏 몸을 던졌으면 좋겠습니다. 무관심을 뚫고도 피땀을 마다하지 않은 그들. ‘영웅’들의 ‘스타’인 것이 부끄럽지 않게요.

잠실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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