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김성근 감독의 적장 칭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23일 잠실구장에 나타난 김성근 SK 감독의 표정은 편안했다. 하루 전인 22일 KIA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선수단을 철수시켜 포스트시즌 첫 감독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쓴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김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도 뜻밖이었다. 충암고 시절부터 두산의 전신인 OB, 쌍방울에 이르기까지 사제의 인연을 맺어온 적장 조범현 KIA 감독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말을 하는 내내 제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아침에 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 아내가 (어제 퇴장 건에 대해) 괜찮으냐고 묻더니 ‘(조)범현이도 아들이니 미워하지 말라’고 해. 우리 딸들도 다들 범현 오빠라고 부르거든”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 감독이 정말 많이 성장했다. 이젠 나를 가지고 놀려고 하잖아”라며 “감독 2년 만에 하위권 팀을 이렇게 강팀으로 만들어 놨다. 팀을 완전히 장악한 채 자신이 추구하는 야구를 밀고 나가 성공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곤 하지만 그 속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승부를 떠나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플레이오프 때는 OB 감독 시절 선수로 데리고 있던 김경문 두산 감독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에 대해 “2007년 우리가 빠른 기동력을 하는 야구를 구사하자 김 감독도 ‘저런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로부터 얼마 뒤 두산이 정말 그런 야구를 하고 있더라”고 회상했다. 그런 두산과 SK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으면서 역시 한국 프로야구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이다.

박종훈 감독과 한대화 감독이 각각 LG와 한화 사령탑에 임명되면서 내년 시즌에는 김 감독이 OB에서 데리고 있던 선수 출신 감독이 4명으로 늘어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냐, 아니면 스승의 수성이냐. 내년에는 노(老)감독과 제자들의 머리싸움이 한결 흥미로워질 것 같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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