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1>‘생활의 참견’ 김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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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7일 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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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쪽으로 오세요!"

프로야구 야간 경기가 끝난 밤 10시. 소년은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소년의 외침을 들은 아버지. 그는 아들이 잡아 놓은 택시를 향해 열심히 절룩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모습을 본 소년은 목이 메었다.

때마침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택시에 탄 소년은 아버지 옆에 앉아 꺽꺽 울었다. 눈물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엉엉 소리 내 울 수 없었다.

아버지도 왜 우는 지 묻지 않았다.

그날 프로야구 경기가 김양수(36)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본 마지막 야구였다.

●"아빠, 똥개!"

네이버 웹툰 '생활의 참견'. 생활 개그가 소재인 이 작품으로 인기 몰이중인 김 작가에게 작품은 곧 삶이고 삶이 곧 작품이다. 그 동안 그런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김 작가의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었다. 1973년생인 그는 중년들이 아련히 기억하는 바로 그 삶, 대기업 임원 아버지를 둔 아들의 삶을 고스란히 살았다.

아침마다 기사가 운전하는 검정색 고급 세단이 대문 앞에 섰다. 명절이면 회사 후배와 거래처 임원들이 집으로 인사를 왔다. 부엌과 창고에는 명절 선물들이 가득 찼다. 웬만한 비싼 장난감은 떼쓰고 조르면 얻을 수 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늦둥이인 김 작가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됐을 때 60대가 된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모든 게 송두리째 바뀌었다. 승용차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버지는 버스 요금통에 1만 원짜리를 넣었다가 간첩으로 오인당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어머니는 보험설계사라는 명함을 새로 팠다. 김 작가는 치킨 집에서 닭을 튀기며 학비를 벌었다.

아버지가 밤마다 드시던 고급 칵테일은 어느 날 소주로 바뀌어 있었다. 1000원짜리를 10만 원짜리 수표처럼 소중히 다루게 됐다. 인생의 유일한 낙이 소주를 마시면서 프로야구를 보는 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술 취해 길을 걷다가 다리를 헛디뎌 다리뼈가 부러졌다.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탄 날. 꺽꺽 운 그 날, 아버지는 나이 들어 뼈가 잘 붙지 않아 불편한 몸으로 김 작가에게 "막내야, 야구장 가자"고 했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의 '잘 나가던' 아버지와 퇴직 후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버지는 김 작가의 작품 '생활의 참견'에 그대로 살아 있다.

'아버지와 대추주'편. 이 만화에서 '아버지'는 어느 날 대추로 술을 담그겠다며 대추와 소주를 사온다. 그리고 씻은 대추를 큰 병에 넣고 소주를 부어 밀봉한다. 그리고 "3개월 뒤 숙성이 되면 따자"고 말한다.

하지만 성질 급한 아버지. 다음날부터 밀봉을 뜯어 야금야금 매일 한잔씩 '대추가 들어있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술이 다 떨어지면 소주를 사다가 다시 부어 밀봉을 하고. 또 그 다음날부터 한잔씩 축내고를 반복한다.

이러다 보니 대추의 맛이 술이 배는 게 아니라 술의 향이 대추에 스며들어 '대추주'가 아니라 '술대추'가 되더라는 내용.

독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대목은 그 다음 장면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산소에 갈 때면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신 술, 하늘에서라도 마음껏 드시라고 산소에 술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많은 술을 뿌리곤 한다."

아버지가 잘 나가던 김 작가의 어린 시절.

김 작가는 명절 때 아버지에게 '종합 선물 세트'를 사달라고 졸랐다. 아버지가 거절하자 '에라 모르겠다', 가게에서 종합선물 세트 하나를 들고 도주를 시도한다. 뒤처리는 아버지에게 부탁하면서.

그러나 초등학생이 뛰어봤자 벼룩. 가게도 못 빠져나오고 아버지에게 덜미를 잡힌다. 그러자 "아빠 똥개!"라며 고함을 지르고는 집으로 달려와 방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한다. 불쌍해 보이면 엄마라도 사줄까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바닥에 엎드린 자세가 문제였다. 엎드린 종아리 위로 학교에서 떠들다 맞은 회초리 자국이 그대로 노출된 것.

음악 교사였던 어머니는 학교에서 맞고 오면 '뭘 잘못했으냐'며 더 때리는 스타일. 결국 김 작가는 이어지는 어머니의 매타작을 울며 견뎌야 했는데….

이 장면에서 김 작가가 맞는 소리를 밖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의 손에는 종합 선물세트가 들려 있다.


▲영상 취재: 나성엽 기자
●중국차와 C학점


집안이 기울었지만 여전히 공부에는 뜻이 없던 김 작가. 그는 영문과 국문과 신문방송학과 등에 지원하며 재수 삼수를 거듭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형이 하는 여행사에 취직해서 밥벌이를 하는 게 좋겠다"며 간판은 상관없으니 관광경영학과를 가라고 했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 공부, 그나마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 김 작가와 김 작가 주위 선후배들의 '모범적이지 못한' 대학생활은 고스란히 '생활의 참견'의 소재가 된다.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았지만 F학점은 면하고 싶던 김 작가. 그는 교수님 방에 중국 차(茶)들 들고 찾아간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연구실을 나오면서 자신의 학번과 이름을 3, 4차례 복창한다. 그렇게 해서 C를 받았다는 얘기.

재수학원에 다닐 때 친구가 담뱃값이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솔 담배를 여러 보루 사재기 했다. 그런데 다른 담배는 다 올랐는데 친구가 사재기한 솔만 '서민의 담배'라며 되레 값이 내렸다.

이 같은 만화 속 얘기는 모두 김 작가 자신과 주위 선후배들의 실화다.

김 작가가 자라면서 유일하게 일관성을 유지한 게 하나 있다. 그림이다.

초등학교 때는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 만화책을 만들었다. 김 작가의 '수제 만화책'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친구들이 줄을 서서 돌려봤다.

그는 내친김에 중학생 때 한 만화 월간지의 만화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정식으로 만화를 그렸다.

몇 장만 더 그리면 완성. 공모전 응모를 코앞에 뒀을 때 어머니가 그의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두 갖다 버렸다.

"공부해서 대학갈 생각은 안 하고, 만화만 그린다"며 김 작가를 나무랐다.

●잡지의 빈 페이지

1997년 대학 졸업 후 한 월간지 기자로 일하면서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게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PC통신에 쓰는 글이 재미있어서 스카우트된 잡지사. 미술 전공도 하지 않은 '관광경영학과' 출신에게 지면을 내줄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특집기사를 꾸미는데 지면 한 구석이 비었다.

"양수야, 너 그때 들이밀었던 그림 있지? '김양수의 카툰판타지'인가 뭔가, 그거 '땜빵'으로 쓰자."

편집장의 반응은 싸늘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연재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의뢰가 들어왔다.

네이버에는 2008년 2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12년간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전업 만화가'로 나섰다.

"원래 50회 100회를 목표로 했는데 지금은 200회를 바라보고 있을 만큼 얘기꺼리가 계속 나와서 아예 전문 만화가로 나서기로 했다"는 그는 "제대로 그림을 배우지 않아서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 낙서처럼 보이는 것을 컨셉트로 한 그의 작품 중간 중간, 뜬금없이 등장하는 진지한 그림을 보면 한 획 그었을 뿐인데 사람의 뼈와 살이 만들어낸 질감이 느껴진다.

그는 "B형 성격에 나만 알고, 남 생각은 할 줄 몰라 2002년에 결혼한 부인 'Song'(만화에 등장하는 아내의 애칭)에게 몹쓸 짓만 한하는 못된 사람"이라고 했다.

"도무지 예술가 같지가 않다"는 말에 그는 "12년간 직장에서 조직생활을 한 게 저처럼 못된 사람에겐 큰 밑천이 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부터 나만의 세계에 갇혀 창작 생활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작품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그는 "힘들어도 참는 지구력, 약속된 시간에 물건을 내놓는 책임감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체득했다"고 말했다.


▲영상 취재: 나성엽 기자
●조
직생활의 교훈

남에 대한 배려 역시 조직생활에서 얻은 덕목이다.

요즘 TV에 나오는 개그맨들이 예능 프로에서 마치 자기 경험담인 것처럼 하는 얘기 중에는 '생활의 참견'을 모방한 게 종종 눈에 띈다. 해당 방송사 게시판이나 김 작가의 블로그, 작품 댓글등에 이를 비난하는 독자들의 의견이 오르지만 김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개그맨들이 얼마나 힘든지 저는 이해해요. 제가 직접 보기도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지구력 책임감 배려. 이 세 가지를 무기로 앞으로 롱런하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김 작가. 마지막으로 체력까지 겸비하기 위해 요즘에는 검도도 시작하고 있다.

"지금 둘째가 엄마 뱃속에 있어요. 만약 둘째도 딸이면 집안에 저 말고 모두 딸이잖아요. 제가 가족을 지킬 정도의 무예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웃으면서 말하는 그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최근 아내 'Song'과 나눈 대화를 '생활의 참견' '그녀의 출산'편에 담았다.

첫째 딸아이를 출산할 때였다.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산부인과는 분만 침대 역시 억대를 호가하는 최첨단이었는데 아내가 진통이 올 때마다 침대의 버튼과 리모콘 가리지 않고 '힘주어 잡으면 고장 날만 한 곳'을 잡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여보, 내 손잡아"라며 아내의 손을 잡으려던 김 작가. 그러나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 기계를 움켜쥐려는 아내에게 마침내 한 마디 하는데….

"내 손 잡아! 이거 망가지면 집 팔아야 해!"

●'칸이 남아서 막 쓰는 별 거 아닌 이야기'

꿈은 피아니스트였으나 현실은 음악 교사였던 김 작가의 어머니. 학교에서 맞은 데 또 때리던 어머니는 아들의 성공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다행이구나.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신기하구나."

그러나 동네 이웃들이 증언하는 어머니 반응은 좀 다르다. 어머니가 아들 자랑을 마구 하고 다닌다는 게 이웃들의 얘기다.

"동네 사람들아! 인터넷에 '생활의 참견' 알아? 그 작가가 바로 우리 아들 양수야 양수! 사인 받아다줄까?"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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