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마련에 골몰하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5일 뜻밖의 원군을 만났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찾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만나 행정기관 분산에 따른 비효율성에 대한 독일의 경험을 들었다.
정 총리는 이날 슈뢰더 전 총리와 가벼운 인사를 마치자마자 “여쭤 볼 게 굉장히 많지만 가장 궁금한 걸 먼저 여쭤 보겠다”며 1990년 독일 통일 후 정부기관을 본과 베를린으로 분산한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물었다. 그러자 슈뢰더 전 총리는 “아마 외교적 대답이 아니라 진실한 대답을 원하는 것 같다”며 독일의 수도 분산이 낳은 부작용을 설명했다.
“지금 15개 연방정부 부처 가운데 7, 8개 부처가 본에 있습니다. 의회는 베를린에 있고 주요 기자들도 베를린에 있습니다. 본에 부처가 있는 장관들은 반드시 베를린에도 사무실이 있어야 합니다. 본에 있는 공무원들, 특히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공무원들은 모두 베를린에 가고자 합니다. 모두가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는 곳, 그리고 여론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부처 분산은 아마 10년 후에는 없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이 내려지는 곳으로 밀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 총리가 다시 ‘10년 후에는 없어질 것’이라는 발언의 정확한 의미를 묻자 슈뢰더 전 총리는 “본에 있는 모든 부처가 베를린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의미”라며 “당시 결정(통일 후 부처 분산)은 본에서 갑자기 모든 일자리를 없앨 수 없음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언을 들은 정 총리는 “곧 국회에 가서 행정부처 분산에 대한 질문을 받을 예정인데, 슈뢰더 전 총리의 말을 예로 들어가면서 (부처 분산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독일은 1994년부터 행정부처 이전을 시작해 연방 대통령 집무실과 16개 정부 부처 가운데 외교부 등 10개 핵심 연방 부처, 연방의회 등을 옛 동독 수도인 베를린으로 옮기고 환경부 등 6개 부처는 본에 남겼다. 청와대가 5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행정부처 분할 이전에 따라 독일 공무원들은 600km에 이르는 본과 베를린을 수시로 왕복해야 했다. 2003년 양 도시를 오간 셔틀 비행기 횟수만도 5500회에 이르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