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길고 빈칸문제 늘어… 외국어영역, 시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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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언어, 비문학 지문서 까다로워 체감 난도 높아
사탐, 모의고사와 엇비슷… 과탐, 약간 어려워져

■ 수험생-학원가 반응


격리시험장 수험생도 감독관도 마스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서울 경복고등학교 분리시험실에서 한 수험생이 마스크를 쓴 채 수능시험 문제지가 배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확진 판정을 받은 717명과 의심환자 1990명 등 2707명은 고사장에 따로 마련된
분리시험실에서, 10명은 병원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렀다. 이종승 기자
격리시험장 수험생도 감독관도 마스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서울 경복고등학교 분리시험실에서 한 수험생이 마스크를 쓴 채 수능시험 문제지가 배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확진 판정을 받은 717명과 의심환자 1990명 등 2707명은 고사장에 따로 마련된 분리시험실에서, 10명은 병원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렀다. 이종승 기자
“1, 2교시는 ‘물’, 3교시는 ‘불’이었다.”

1, 2교시까지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문제를 풀었다. 막히는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크게 어려운 문제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 수험생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외국어 영역은 달랐다. 입시 업체도 대부분 지난해보다 어렵다고 평가했다. 과학탐구도 어려웠다는 의견이 많았다.

○언어 영역

지난해 수능이나 6, 9월 모의평가와 전체 난도는 비슷하지만 비문학 영역이 까다로웠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정보 정보학원장은 “비문학 지문이 어렵고 추론이 필요해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가 높았을 수 있다”며 “하지만 점수는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의고사 때 언어 영역 평균 2등급을 받았다는 재수생 전시은 씨(19·세화고 졸)는 “직렬, 병렬을 다룬 기술 지문이 낯설고 까다로웠다”며 “문제 자체가 어렵기보다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역시 평균 2등급을 받았다는 김동환 군(18·양재고 3년)도 “지행론을 다룬 윤리 지문이 어려웠다. 지문 길이는 평소보다 긴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수리 영역

수리는 ‘가’, ‘나’형 모두 지난해보다 쉬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6,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도 더 쉽거나 비슷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새로운 유형이나 고난도 문제가 예년보다 줄었다는 것이 이유다.

유병화 고려학원 평가이사는 “평가원이 ‘가’형 응시자들이 어려워하는 공간도형이나 벡터는 평이하게 출제한 반면 상위권의 변별력을 위해 하나의 개념을 깊이 있게 다룬 문제들을 포함시킨 것 같다”며 “‘나’형은 모의평가에서 다룬 내용들이 나와 체감 난도도 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형을 본 학생 사이에서는 원 넓이가 나오는 무한등비급수 문제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형에서는 함수 간의 관계를 가지고 미분 가능성을 예측하는 문제가 고난도로 꼽혔다. 울산대 의대 수시 모집에 1차 합격한 최진미 양(18·여의도여고 3년)은 “‘미분과 적분’에서는 마지막 두 문제가 까다로웠다”고 전했다.

○외국어 영역

시간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빈칸 문제가 늘어났고 지문 길이가 전체적으로 길어진 영향이 컸다. 평소에 전 영역 1등급을 받는다는 재수생 오승록 씨(19·대원외고 졸)는 “아주 어려운 모의고사 수준이었다. 초반 문법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어려웠다”고 말했다. 외국어 영역 평균 2등급이라는 이주희 군(18·중앙대부속고 3년)은 “문장 구조를 일부러 꼬아놓은 것 같아 독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특히 배점이 높은 문제가 어렵게 출제돼 실제 점수 하락폭은 수험생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용근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까다로운 빈칸 유형 문제 5개 중 두 문제가 3점 문제였다. 또 속담·격언 문제도 몇 년 만에 나와 미처 준비를 못한 학생은 더 어렵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탐구영역

사회탐구는 국사, 경제지리에 어려운 문제가 있었지만 대체로 6, 9월 모의고사와 비슷하거나 쉬웠다는 평이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는 “역대 수능 문제, 평가원 모의고사와 유사한 유형의 문제가 다수 출제돼 지난해보다 난도가 낮아졌다”고 평했다.

과학탐구는 지난해보다 약간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과목별로 어려운 문제가 섞여 있어 상위권 수험생 사이에 변별력이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박완규 문정고 교사는 “점수는 작년과 비슷하거나 과목당 1, 2점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신종플루환자, 시험 도중 해열제 복용▼
■ 고사장 스케치


12일 실시된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차분하게 치러졌다. 아침기온이 섭씨 6.1도를 기록했지만 체감 날씨는 다소 쌀쌀했다.

신종 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시험장에 분리 시험실이 마련돼 수험생 중 확진환자와 의심환자들은 별도로 시험을 치렀다. 별관 등 다른 시험장과 떨어진 곳에 준비된 시험실 입구에서 감독관이 일반 수험생의 출입을 통제했으며 전용화장실도 지정됐다. 이들은 휴지와 쓰레기통도 따로 지급 받아 책상 옆에 놓고 시험을 치렀고 점심시간에는 이동을 자제할 것을 권유받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경기고에서 시험을 치른 확진환자 오모 씨(24)는 “3일 전 확진판정을 받고 열이 오르락내리락한다”며 해열제를 먹고 시험을 치렀다. 중고교 등에서 ‘차출’된 보건교사가 응급상황에 대비해 시험 내내 교실 밖에서 이들을 지켜봤다.

분리 시험실로 쓰인 교실에서는 시험이 끝난 뒤 다음 날 같은 자리에서 공부할 학생을 위해 걸레에 소독약을 적셔 책걸상과 바닥을 모두 닦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신종 플루 확진판정을 받고 폐렴으로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한 한 재수생(19)은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단 채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시험을 치르던 중 발열 등으로 신종 플루가 의심돼 일반 시험실에서 분리 시험실로 옮기는 수험생도 많았다. 서울지역에서 분리 시험실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은 1교시 473명에서 4교시 522명으로 늘었다.

정부가 신종 플루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고사장 앞 응원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학교에 보낸 가운데 응원 열기가 줄어 교문 앞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서울 여의도여고 앞에는 20여 명의 학생이 커피 등을 준비하고 선배의 건승을 기원했지만 조용히 “힘내세요”라는 말을 건넬 뿐 구호 등은 없었다. 여의도여고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응원하러 온 재학생이 줄고 조용해 수능을 치르는 날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를 격려하기 위한 후배들의 자발적인 응원은 곳곳에서 계속됐다. 경기고 고사장 앞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서울 중동고 학생 20여 명이 열을 맞춰 선 채 일제히 학교 구호를 외쳤다. 중동고 2학년 조덕진 군(17)은 “선생님은 응원을 만류했지만 선배를 위해서라면 신종 플루도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수험생은 겨우 입실시간을 맞춰가며 오토바이나 경찰 순찰차를 타고 허겁지겁 고사장에 나타나는 등 지각사태는 올해도 반복됐다. 서울 금옥여고에서는 오전 8시가 조금 지나 6명의 수험생이 소형 트럭을 함께 타고 고사장에 도착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사탐 막걸리 수출증가 등 사회이슈 소재로 다뤄
언어 2001년 기출 소설 ‘장마’ 시나리오로 각색▼

■ 이색 문제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이색 문제들이 눈길을 끌었다. 사회탐구영역에서는 최근의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한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경제 17번 문제에서는 신종 전염병 백신을 개발한 업체가 전염병 확산에 따라 특허 기술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는 상황이 제시됐다. 신종 인플루엔자 파동을 연상케 하는 문제였다.

경제 15번 문제에는 최근 들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막걸리의 수출이 증가한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경제지리에서는 자원을 재생 가능한 정도로 나눠 분류한 문제와 주요 국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그래프로 제시한 문제가 출제돼 ‘녹색성장’을 중시하는 최근 분위기를 보여줬다.

법과 사회에서는 전처와 사별하고 재혼한 남성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을 때 재산 상속에 대한 판단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한국근현대사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됐고 세계사에서는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책 광고가 예시문으로 제시됐다. 지구과학에서는 올해 가을에 나타난 황사와 9월 일어난 수마트라 해역 지진 등 실제 발생한 자연현상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언어영역에서는 2001년 수능에 출제됐던 윤흥길 원작 소설 ‘장마’가 윤삼육 각색의 시나리오로 변신해 출제돼 눈길을 끌었다. 언어영역 29번 문제는 시나리오의 장면과 장면을 연계할 때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요소를 찾는 문제로 이번에 새롭게 출제된 유형이다.

수리영역에서는 인형에 셔츠와 바지를 입히는 컴퓨터 게임에서 옷을 입히는 경우의 수를 구하는 문제가 눈에 띄었고 외국어영역에서는 습도계로 이슬점을 측정하는 원리를 2개 그림으로 제시한 문제가 독특하다는 평을 받았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사탐서 誤字 발견… 고사장서 뒤늦게 정정 소동▼

대학수학능력시험 4교시 사회탐구 영역 문제에서 오자(誤字)가 발견돼 수능 출제본부가 일선 고사장에 오자를 정정할 것을 지시하는 이례적인 일이 빚어졌다. 사회탐구 영역의 사회 문화 10번 문제에서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접경지역 아마존 분지에 살고 있는 야노마모 족의 문화에 관한 지문이 나왔는데, 제시문 가운데 한 단어의 표기가 ‘야노마노’로 잘못 인쇄된 것. 제시문에는 같은 단어가 6번 나왔는데 한 단어만이 끝 글자가 잘못 표기됐다.

출제본부는 “수능 일주일 전인 5일 사회탐구 영역 인쇄를 마친 직후 점자형 문제지를 만들다 오자를 발견했다”며 “사회탐구 문제지를 다시 인쇄할 경우 다른 문제지 인쇄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돼 오자가 난 문제지를 그대로 고사장에 보냈다”고 말했다. 정병헌 출제위원장은 “그냥 놔뒀어도 수험생들이 혼동하지 않았겠지만 오자를 발견한 이상 고사장에서 바로잡기로 했다”고 말했다.

출제본부는 12일 오전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전국 수능 고사장에 긴급 공문을 보내 문제 오류를 정정하도록 지시했다. 출제본부는 “4교시가 시작되기 전 감독관이 칠판에다 문제 번호를 적고 오자와 정자(正字)를 함께 적어 두도록 했다”며 “수험생들의 혼란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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