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기사를 보면 현재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원투수 박찬호(36)의 위상은 2001년과 흡사할 정도다.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는 보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당시와 현재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상한가라는 기준의 차이가 있겠지만 불펜투수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클로저도, 셋업맨도 아닌 불펜투수의 최고 연봉은 300만 달러 수준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2년 개런티 계약이다. 박찬호가 올 오프시즌 2년 계약을 체결한다면 대박이다. 올 겨울에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게 지난 2년과 다르다.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 곧바로 한국을 방문한 것을 봐도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증거다. 해외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시즌 성적이 좋으면 한국에 일찍 간다는 사실이다.
2001년 겨울 LA 다저스에서 FA를 선언했을 때 국내에서 파견된 스포츠신문 특파원만 5명이 박찬호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 해 FA 시장에서 투수 최대어는 박찬호였다. 당시 FA 시장에는 에이스급이 없었다. 또 슈퍼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의 고객이었다. 대박이 터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스토브리그는 ‘보라스 타임’이다. FA 대어들을 수명씩 확보하고 있어 그의 움직임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2001년 스토브리그 윈터미팅은 보스턴에서 열렸다. 윈터미팅은 FA 대어들의 계약이 이뤄지는 장소다. 야구기자들이 한곳에 모이는 장소여서 기왕이면 이 때 FA 계약을 맺는 게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편의상 좋다. 그러나 박찬호의 텍사스 레인저스행은 보스턴에서 성사되지 않았다. 보라스는 전형적인 수법대로 ‘많은 팀과 접촉하고 있다’고 했으나 나중에 밝혀졌지만 박찬호를 원했던 팀은 텍사스뿐이었다. 에이전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안 된다.
박찬호는 당시 텍사스와 5년간 6500만달러에 장기 계약한 에이스였다. 비록 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으나 갈 때만큼은 에이스로 영입돼 구단주의 전세기까지 제공받았다. 지금은 팀 전력을 좌우할 정도의 투수는 아니다. 현재 미국 언론에 거론된 팀은 원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유일하다. 필라델피아 지역신문의 보도여서 정확하다. LA 에인절스 얘기도 나왔지만 LA 타임스는 박찬호를 거론한 적이 없다.
ESPN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료로 볼 수 있는 ‘루머 센트럴’은 야구계의 소문을 날마다 업데이트하는 코너다. 이곳에도 박찬호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3루수 숀 피긴스의 행로,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필리스 복귀설, 최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구원투수인 브랜던 라이언의 필리스행이 화제였다. 라이언과 박찬호는 보직이 중복된다.
현재로서는 박찬호가 국내 기자회견에서 선발을 하고 싶다고 밝혔기 때문에 에이전트 스티브 보리스가 일단은 제5선발을 필요로 하는 팀을 물색하는 게 우선이다. 보리스도 박찬호를 선발로 원하는 팀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선은 선발을 원하는 팀이지만 차선은 필리스 잔류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올 겨울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