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통령격인 정상회의 상임의장에는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 유럽의 외교장관격인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에는 캐서린 애슈턴 통상담당 집행위원(영국)이 19일 뽑혔고 유럽의 총리격인 집행위원장에는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 집행위원장(포르투갈)이 9월 재선됐다.
정상회의 상임의장이나 외교대표 같은 자리는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의 덩치 큰 상대방에 맞서 EU가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재직 시절 “유럽과 대화하려면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하느냐”고 말할 정도로 그동안 EU에는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을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롬파위 총리는 상임의장으로 선출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첫 전화를 열심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두랑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키신저 전 장관이 제기했던 문제가 이제야 해결됐다”며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의 외교장관인 애슈턴 대표에게 전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단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은 미국의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럽인의 대부분은 판롬파위와 애슈턴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들이 미국 중국 등에 맞서 유럽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즉각 제기되고 있다. 이 중 영국이 특히 비판적이었다. 일간 가디언은 이번 선택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실패했으며, 미국 중국 ‘G2’로의 쏠림 현상을 저지할 기회도 잃었다고 전했다. 일간 더 타임스는 EU 정상들이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 압도될까 겁을 먹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비유될 정도로 비밀스러운 막후 타협 끝에 부드러운 관료형 정치인 판롬파위 총리에게 자리가 돌아간 셈이다. 한편 외교대표 자리에는 영국 내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선출직 공직에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애슈턴 집행위원이 지명됐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알립니다] ‘EU 상임의장’으로 표기 그동안 ‘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을 ‘EU 대통령’이라고 써왔으나 그 역할 등을 감안해 앞으로는 기본적으로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표기합니다. 일부 범위에서 EU를 대표하지만 주 임무가 EU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일인 데다 그 권한과 위상이 보통 국가의 대통령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외교통상부도 ‘상임의장’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