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김정일을 춤추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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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7일 20시 47분


지금 평양에서는 주택 10만 채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얼마 전 만수대 거리의 새 아파트를 둘러봤다. 노동신문은 전체 6면 가운데 5개 면을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장면과 아파트 건물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채웠다. 여러 동의 고층 아파트와 깨끗하게 정리된 거리는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은 만수대 거리 배치도 앞에서 보고를 받은 뒤 아파트 안에까지 들어가 방과 부엌, 욕실을 꼼꼼히 살펴봤다.

10만 채는 엄청난 물량이다. 만수대 거리의 아파트는 방이 3∼5개인 중대형이다. 한 가족을 5명으로 잡으면 평양 시내에 50만 명의 주민이 살 수 있는 주택이 새로 들어서는 것이다. 300만 명의 평양시민 가운데 6분의 1이 새 집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佛도 美도 강성대국 들러리?

북한 당국은 1970, 80년대 15년 동안 평양에 현대적인 거리를 만들고 대규모 공공건물을 세운 ‘평양번영기’와 비교하며 선군(先軍)시대의 새로운 수도 건설을 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평양 주민의 눈앞에 번듯한 건물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니 당국이 외치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 신기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적어도 평양 주민에게 이번 겨울은 추워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올 들어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2차 핵실험 이후 강력한 대북(對北)제재가 시행되고 있고, 돈줄인 남한과의 관계도 얼어붙었다. 그래서 평양에서 진행되는 대역사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올까. 우리가 혹시 북한의 능력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늘고 있는 외국 고위인사들의 평양 방문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프랑스의 대통령특사 자크 랑이 2주 전 평양을 방문했다. 프랑스는 2000년 말과 2001년 초 유럽과 북한의 수교 열풍이 몰아칠 때도 꿈쩍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핵과 인권 문제가 개선되기 전에는 북한과 수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견지했다.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할 만한 특별한 여건 변화도 없다. 핵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과 6자회담 중단으로 더 악화됐고, 인권 상황은 유엔이 5년 연속 대북 인권결의를 채택할 정도로 여전히 심각하다.

외국 고위인사의 평양행은 다음 달 8일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으로 절정에 도달한다. 이상하게도 유엔 제재를 앞장서 만들어낸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북한과의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두둔은 여전하다. 미국과 프랑스가 대화로 돌아섰으니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남은 나라는 영국뿐이다. 일본 총리의 방북설도 나온다. 주간 아사히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12월 방북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점점 더 암울해지는 北미래

김 위원장은 만수대 아파트를 둘러보며 활짝 웃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줄을 잇는 외국 인사들의 평양 방문도 웃음을 짓게 하는 호재(好材)다. 그는 강대국들이 경쟁하듯 대화의 손을 내민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다. 김 위원장이 느끼는 외부 위협의 강도도 줄어들 테니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외부 세계가 김 위원장의 강성대국 잔치에 들러리 노릇을 하면 2400만 북한 주민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은 강대국 대표들의 방문과 평양의 아파트 같은 일부 지역의 가시적 성과를 체제 수호를 위해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선전수단을 총동원해 강성대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우기는 지도자에게 불만을 제기하는 주민이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김 위원장이 평양의 새 아파트를 둘러보며 활짝 웃는 모습만큼 그의 요즘 심사를 잘 보여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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