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기]<1>스타 만들기 산업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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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1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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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역배우 지망생 한군 군(11)에게는 휴일이 없다. 2년 전부터다. 평일 방과 후는 물론 주말에도 연기학원에 다닌다. 일요일엔 6시간 수업을 듣는다. 친구들과 맘껏 놀고 싶지만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기 위해 참아야 한다.

한 군은 6개월간 창(唱)을 배웠다. 연기 선생님이 "목소리가 특이하니 개인기로 창을 연습하라"고 추천했다. 최근 한 인기 드라마의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올 봄부터는 하루도 빼지 않고 검도학원에도 다닌다. 사극에서 대역 없이 무술을 소화하고 싶어서다. 그의 꿈은 연기력과 개인기를 겸비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

#2

연기자 지망생 K 씨(21·여)는 매일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듣는다. 평소 남자처럼 툭툭 내뱉듯 말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다. 눈웃음을 짓고 수줍게 웃는 연습도 빼먹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지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털털한 말괄량이에서 청순한 소녀로 거듭나는 중이다. 하이힐을 신고 여성스럽게 걷는 법, 어려운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법, 데뷔까지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것은 전문 이미지 컨설턴트가 관리한다.》

스타 만들기 산업 전성시대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연예산업 관계자들은 연예인 지망생이 100만 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연예산업 시장규모도 16조 원대에 접어들었다. 등록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연예기획사는 2000개, 연기학원은 100개에 이른다. 연예인 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스타 메이킹' 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사교육'의 가치사슬

요즘 연기학원은 학생들에게 연기만 가르치지 않는다. 연예인 지망생마다 개성과 이미지에 맞는 개인기를 갖출 수 있도록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수강생들이 힙합댄스, 노래, 워킹, 무용, 판소리, 성악, 승마 등 다양한 특기를 배울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것도 연기학원의 역할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연기학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사교육' 고리가 형성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케이블TV 엠넷(Mnet)에서 최근 방영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쏠린 관심은 스타가 되고 싶은 국민적 욕망을 보여준 사례다. 전국에서 72만 명이 예선에 몰려들었고, 1등을 뽑는 마지막 회는 역대 케이블 방송 최고 시청률인 8.47%를 기록했다. 기획 단계인 '슈퍼스타 K 시즌 2'에도 많은 기업들의 후원이 몰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예산업 시장이 '초(超)공급과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스타 만들기 산업 '다변화, 전문화'

스타 만들기 붐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성형산업이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만난 복수의 성형외과 원장들은 "범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예인 지망생 중 90% 이상이 성형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귀호 코헨 성형외과 대표는 "연예인 지망생들은 1인당 평균 1000만~2000만 원 정도를 성형수술에 쓴다"며 "눈에 띄는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를 갖추려면 일반인보다 시술비용이 훨씬 더 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성형외과와 연예기획사들의 '전략적 제휴'는 트렌드로 굳어졌다. 대형 기획사와 손잡은 성형외과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성형은 물론 몸매, 화장법, 말투, 걸음걸이, 제스처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이른바 '연예인 이미지 컨설팅'이다. 이미지 컨설턴트 한미정 씨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연예인 지망생이 2, 3년간 이미지 컨설팅을 받는 데는 최소 3000만 원에서 많게는 몇 억 원까지 든다"고 귀띔했다.



해외 연예기획사, 프로덕션과 연계한 의료 마케팅도 등장했다. 김병건 BK동양성형외과 대표원장은 "최근에는 대만, 중국, 동남아 연예인 지망생들까지 한국으로 몰려들 정도로 산업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타 만들기 열풍은 공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에만 4개의 연예 관련 고등학교가 신설됐고, 2개 고교엔 연예 학과가 생겼다. '연예인 사관학교'를 표방하며 올해 문을 연 한림연예예술고와 서울공연예술고는 기존 예술고의 커리큘럼인 클래식 음악 대신 실용음악과 연기 등 대중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연예 관련 고등학교가 늘어나면서 연기·보컬 아카데미에서는 '예술고 입시대비반'까지 등장했다. 연기 아카데미 MTM의 이병용 전임강사는 "예전에는 예고 진학을 위해 3개월가량 준비했지만 요즘은 중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예고 입시에 매달린다"고 전했다.

산업은 커지는데 관련 법규는 전무

국내 스타 만들기 산업이 공급 과잉상태인데도 팽창을 거듭하는 배경에는 특수한 한국적 시스템이 있다. 바로 연기학원이나 연예기획사가 연예인 지망생에게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행 때문이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지망생을 발굴해 교육하고(양성), 홍보와 관리를 맡을 뿐 아니라(매니지먼트), 배역을 따주고 계약하는(에이전트) 업무까지 모두 수행한다. 이처럼 공들여 키운 유망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속금을 주며 옭아매는 것이다.

하윤금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거액의 전속금을 지불한 기획사는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불합리한 수익배분과 장기계약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로 각 영역의 수직적 결합이 연예사업의 투명성과 장기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연예산업을 들여다보면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기본적으로 전속금이 없을 뿐 아니라 매니지먼트와 에이전트의 겸업을 금지하고 있어 지망생들은 기획사보다는 오디션을 통해 데뷔할 수밖에 없다. 수익배분도 매니지먼트사 15%, 에이전트 10% 등으로 규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니지먼트와 에이전트 업무를 분리하는 '연애매니지먼트사업법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기획사들의 반발로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예인 지망생 100만 명 시대, 스타 만들기 산업의 호황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특별취재팀
김유림 수습기자 rim@donga.com
김철중 수습기자 tnf@donga.com
박혜림 수습기자 inourtime@donga.com
박훈상 수습기자 tigermask@donga.com
유근형 수습기자 noel@donga.com
이은택 수습기자 nabi@donga.com
최예나 수습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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