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예방과 사후대처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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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4일 21시 15분


올봄 멕시코에서 느닷없이 출현한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갔지만 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지만 진짜 바이러스가 아니라 Y2K라고 불리던 밀레니엄버그 문제였다. 컴퓨터가 연도표시의 마지막 2자리만을 인식해 1900년 1월 1일과 2000년 1월 1일을 같은 날로 오인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컴퓨터의 대혼란을 말한다.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당시엔 Y2K로 인한 공포가 굉장한 것이어서 기업들이 Y2K 대비책을 제출하지 않으면 은행에서 대출조차 해주지 않았다.

Y2K가 과장된 공포?

이 Y2K가 지난달 18일자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10대 ‘과장된 공포(Overblown Fears)’에서 첫손에 꼽혔다고 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뉴스위크는 공포는 컸지만 파급력은 적었던 과장된 공포의 대표주자로 Y2K를 꼽고 예상과 달리 심각한 전산장애 등 소위 ‘Y2K대란’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뉴스위크지 선정 과장된 공포에는 광우병,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이 포함됐지만 내가 수긍할 수 있는 항목은 광우병뿐이다.

뉴스위크지가 Y2K를 과장된 공포라고 본 것은 Y2K대란을 예방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경시한 결과다. 만약 언론이 Y2K의 위험성을 집중 보도하지 않고 정부와 기업들이 이 문제를 방치했다면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이나 병원 수술실 컴퓨터가 잘못돼 전쟁이 나거나 사람이 죽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예방프로그램이 잘 작동한 덕분에 피해가 없다보니 과장된 공포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예방 노력은 도외시하고 사고가 터지면 책임을 추궁하는 경향은 후진국일수록 심하다. 예산당국에서 심의를 할 때마다 ‘예방’이란 글자가 붙은 예산은 삭감 대상 1순위에 오른다. 돈 달라는 곳은 많은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막기 위해 돈을 쓰기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에 따르면 예방이야말로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문제해결 방식이다. 그가 창안한 미니맥스(minimax)정리에 따르면 아무 대비책을 세우지 않아 손해가 발생한 경우와 대비책을 세워 손해가 최소화한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가 비용·효과 측면에서 훨씬 낫다. 최악의 경우 예상됐던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대비책에 소요되는 비용만 날리게 되는 셈이다.

굳이 복잡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런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보았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홍수로 인한 재산피해액 대 복구비의 비율은 1 대 1.60이다. 피해구제와 복구에 들어가는 예산에 비하면 축대와 제방을 보수하고 하수도를 정비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훨씬 적다. 내년엔 영유아 보육료 지원과 아동양육수당 지원 등 저출산 대책에 상당한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는 저출산 고령화가 불러올 미래의 사회적 비용보다는 적을 것이다.

예방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올해 정부가 예방에 소홀했다가 곤욕을 치른 것이 인플루엔자 방역대책이었다. 예산당국은 지난해 학자들의 거듭된 팬데믹 가능성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염병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신종 플루 환자가 3000명을 넘어선 8월에야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타미플루와 예방백신 확보를 위한 긴급예산이 배정됐다. 이 때문에 물량확보가 늦어져 신종 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다.

리스크 제로 사회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쏟아 붓는다 해도 사고는 터질 수 있다. 그러나 예견된 사고가 터진 다음에 사후수습에 급급한 후진국적 관행은 고쳐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타성에서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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