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산업은행이 한중일 3국의 기술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3.8년 앞섰다. 그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88%는 ‘4년 내에 동종 중국기업과의 기술격차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당시 ‘중국이 첨단기업의 인수와 유치를 통해 기술을 확보한다면 한국을 추월하는 날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5년 전 예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 기업을 앞질러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중국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회사 비야디는 한 번 충전으로 400km를 달리는 전기자동차를 세계 경쟁기업의 절반 가격에 생산해내며, 1만 명이 넘는 기술진으로 세계 1위를 넘보고 있다. 작년 매출의 75%를 해외에서 올린 세계 2위 통신설비 제조업체 화웨이, ‘중국의 삼성전자’라 불리는 하이얼, 중국 최대 태양광패널 제조업체 상더전력 등은 각각 수천 명, 수만 명에 이르는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2007년 연구개발 투자액은 488억 달러였는데 우리는 2008년 313억 달러였다. 중국은 이제 값싼 저질품을 만드는 짝퉁 천국이 아니다.
재작년에 나온 IBM컨설팅 한국보고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를 앞둔 한국 경제가 20년째 GDP 순위 11위권에 정체돼 있다’며 혁신의 실패를 원인으로 꼽았다. 선진국을 모방하는 전략으로는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더구나 2010년을 눈앞에 둔 지금 우리는 작년 GDP 순위에서 15위로 밀렸으며 중국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신세다. 기술에 대한 행정규제가 그 원인의 하나다.
지식경제부는 기술개발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4463건이나 된다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9일 보고했다. 연료전지를 생산하는 기업은 가스안전공사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43가지나 중복검사를 받는다. 검사비만도 2600만 원이나 든다. 10대 대기업의 경우 기술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연평균 246억 원을 쓰고 대기업들은 평균 20개월이 걸린다. 18개 정부 부처가 이런 식으로 제각각 관련 법률을 만들어 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기술개발을 적극 장려해도 중국의 추격을 벗어나기 힘든 마당에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니 한심하다.
기술규제는 전기 통신 에너지 같은 전문 분야와 연관된 탓에 그동안 해제나 완화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지식경제부가 기술규제에도 ‘일몰제’를 도입하고 중복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차이테크(China-tech)는 약진하고, 코리테크(Korea-tech)는 규제로 발목이 잡혀 있으면 우리의 미래는 예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