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오피스텔(밤) 기자와 김 작가, 박 작가 마주 보며 테이블에 앉아 있다. 두 작가 여전히 줄담배.
▶ "미실 사후 허술한 극 전개 인정. 하지만!"
Q : 미실 사후 극의 전개가 부실해 시청률이 떨어졌다고들 합니다. '미실의 저주'라고…. 朴 : 시청률이 떨어질 건 예상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 빠졌죠. 원래는 미실 사후 새로운 드라마를 열어야 했어요. 의자왕과 계백, 연개소문, 당 태종 이세민까지 등장하는 큰 판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제작 여건이 여의치 않았어요. 金 : 연개소문까지 세팅하려면 최소한 30부 정도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현장이 너무 열악하고. 새 인물 없이 기존 인물만 가지고 전개하려니까 힘이 빠진 점도 있어요.
Q : 연장한 12회(선덕여왕은 50회에서 12회 연장)안에 다 담기엔 이야기가 크군요. 선덕여왕의 뒷이야기, 유신과 춘추가 나오는 삼국통일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金 : 하고 싶죠. 사실 선덕여왕을 깔끔하게 끝내고 시즌 2로 가서 김춘추(태종무열왕) 얘기로 가야 하는 건데. 朴 : 정말 역동적인 순간은 지금부터죠. 金 : 사실 비담도 정치적으로 유신과 대립했어야 하는데 그걸 빼니 멜로만 남은 거죠. 비담은 그동안 정치적인 토대를 쌓아온 게 없었어요. MBC에서는 '더 연장하라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재연장을 하기엔 저희 상태도 안 좋고 현장 제작진과 배우들도 그렇고. 힘들죠. 朴 : 쉴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저희도 했을 거예요. 金 : 삼국통일을 하려면 적어도 백제 전-고구려 전-대당 전 등 세 번의 큰 전투가 꼭 들어가야 해요. 그 준비가 쉽지 않아요. 선덕여왕도 제작진이 어렵게 대야성 전투를 끌고 간 거예요. 朴 : 시스템상 전쟁 사극이 후반부에 가면 기대에 못 미치는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Q : 한국 드라마의 전쟁신은 중국 드라마와 비교하면 참 허술해요. 金 : 드라마 'XX' 식권 사건처럼(흐흑). 朴 : 병사 2만 명분 군량미가 두 수레야. 그 안에는 군량미가 아니라 식권이 있다는 거지. (흐흐흐) 金 : 사극 하면서 전쟁 치르는 건 괴로워요.
Q : 미실이 있을 때는 명대사도 빵빵 터졌는데, 미실 사후에는 힘드신 게 느껴집니다. 金·朴 :하하하. Q : 미실 명대사 다 잊으셨죠? 金 : 미실이 죽은 지가 오래돼서…. 朴 : 미실이 누구예요?
Q : 사극이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등장인물 나이가…. 朴 : 나이를 얘기하신다면 저희가 할 말이 없어요. 죽여주세요. 金 : 미실이 진평왕을 올린 것은 사실이잖아요. 진평왕이 오래 집권을 하고 덕만이가 등극한 거니까 즉위식 당시 사실 50세 정도예요. 미실이 80대고요. 朴 : 지금 덕만이 60대예요. 하지만 덕만이 60대 분장을 하고 비담이 흰 수염 달고 나왔으면 멜로는 조금 재미없을 거예요.
Q : 드라마 상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金 : 지금 덕만이 40세 전후. 비담도 비슷하고. 朴 : 유신도 저희가 같은 또래로 설정했으니까 세 사람 모두 40세 정도로 보시면 돼요. Q : 비담은 40세 총각귀신이군요. 후반부에 덕만이 비담에 대한 마음을 연 것은 죽을병에 걸렸기 때문인가요? 朴 : 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한 거죠. 그것마저 쉽지가 않아요. 마지막에 덕만이 정말 불쌍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에요. 평생 힘들게 살다가 그거(사랑) 하나 가져보려고 한 건데….
Q : 왜 일에 성공한 여자는 사랑에 실패한다는 메시지를? 金 : 그 고민은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여왕은 결혼을 하면 후계 구도가 망가지는 건 사실이예요. 현대 여성과는 다르니까 . 미실은 남자를 들이는 게 자기 세력을 뻗는 거지만, 여왕은 그게 아닌 거죠.
▶ 작가들이 본 훈남 유신·비담·춘추…
Q : 미실은 왜 아들 중에 비담에게 대의를 넘겨줬나요? 朴 : (당연하다는 투로) 자식 중에 유일한 덕만 파잖아요. Q : 자질·능력과는 상관없이 줄을 잘 섰기 때문이군요. 오늘따라 비담이 왜 이렇게 불쌍하죠? 朴 : 미실이 자신과 가장 비슷한 아들이라고 생각했겠죠. 미안한 마음도 있을 테고. 비담이 나중에 그런 말을 해요. 미실의 목적에 의해 태어나서 문노의 목적에 의해 길러지고 너희의 목적에 의해 난을 일으켜야 하느냐고. 비담의 인생도 진짜 기구하죠. 탄생은 사랑의 결실인데, 진지왕과 미실의 철저한 거래에 의해 태어난 거니까. 金 : 당초 설정도 유신은 양의 절정에 서 있는 인물이고, 비담은 음의 절정이고. 유신은 부모가 사랑의 도피로 태어난 아이니까 철저하게 남을 믿는 캐릭터예요. 朴 : 덕만도 버려졌고 비담도 버려졌는데 둘의 삶은 전혀 달라요. 그 차이는 양육자예요. 유모 소화가 사랑으로 덕만을 키웠고, 문노는 비담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길렀죠. 거기서 운명이 갈렸어요.
Q : 문노는 왜 애를 그렇게 키웠을까요? 金 : (흐흐흐) 아마 유신이 애를 키우면 그럴 거예요. 朴 : 유신은 전쟁터에서 후퇴했다고 아들도 내쫓고 평생 안 봤어요. 무서우면 후퇴할 수도 있는 거지. 金 : 타던 말도 죽였잖아. 자기가 기생집에 가 놓고 죄 없는 말은 왜 죽여? 朴 : 진짜 못된 애야. 절대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Q : 여동생 화형 쇼도 있어요. 朴 : 신라 판 장준혁이라니까.(장준혁은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배우 김명민이 연기한 성공지향적인 인물) 金 : 드라마 속 유신도 둔한 것 같지만 처세를 잘했어요.
朴 : 심지어 이런 것도 봤어요. 59회에서 춘추와 비담 대립의 단초가 보였잖아요? 요즘 방송에 나오는 '태어난 순간부터 7~8살 때까지 기억이 모두 생생하게 남아 있다면, 넌 아마 미안해서라도 엄마한테 함부로 못 할 거야'라는 광고 있죠? 그걸 비담이 춘추에게 하는 말로 패러디 한 거야. '춘추야 내가 네 엄마 화살 맞을 때 발로 6개 화살 날리고, 네 엄마 치료하려고 했고 덕만이랑 약재 구해왔고 알천 유신 넋 놓고 있을 때 네 엄마 시신도 수습했다. 네가 그거 알면 나한테 이럴 수 없다'고. (하하하)
Q : (크크큭) 솔직히 비담이 소싯적에 춘추 두들겨 팬 거 빼고는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잖아요? 朴 : 그래서 오늘(60회)에서 춘추가 비담에게 속으로 미안하다고 해요. "내 정치에 비담 네 자리는 없다"고. Q : 춘추도 더 두드러져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정치인으로 보기엔 너무 어려요. 朴 : 춘추 승호에게 수염도 붙여봤는데 영 어색해서…. 金 : 마실 사후는 그동안 펼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이니까요. Q : 선덕여왕에는 워낙 재밌는 캐릭터가 많았는데 중간에 병풍이 됐다는 느낌입니다. 金 : 춘추 칠숙 아무나 한 명 잡아도 드라마 30편씩 쓸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덕만이 주인공이라 덕만에게 이야기가 종속돼야 하니까. 朴 : 저희는 춘추를 비담과는 반대에 있는 실리주의자로 봤어요. '연호 버리면 어때? 백성 데리고 잘 살면 되지. 후세야 욕을 하든 말든 나는 실리를 챙기겠다.' 이런 인물로요.
▶ '신종 플루' 등 촬영장 악재로 멜로 장면 사라져
Q : 주요 출연자들이 신종 플루에 걸리고 낙마사고를 당하는 등 촬영 악재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대본을 수정한 걸로 아는데 어떤 장면이 빠진 건가요? 朴 : 칠숙과 비담의 피 튀기는 대결이 한번 있었어요. 金 : 미실의 난 초반부 비담이 덕만을 구출할 때 멜로가 있었는데 다 버렸어요. 대신 비담 몫을 유신과 월야가 나눠 가졌죠. 비담의 매력을 보여줄 부분이었는데 아쉬워요. 金 : 덕만이 비담에게 처음 고백을 할 때도 신종 플루 때문에….
Q : 비담 씨 사정상, 덕만 양을 만질 수가 없었군요. 金 : 비담 역의 남길 씨도 굉장히 안타까워했어요. 朴 : 남길 씨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도 저희에게 '액션 할 수 있습니다. 하게 해 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걷는 것도 힘들어하던데…. 안되는 거죠. 말렸어요.
Q :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극 후반부에서 무사 비담을 왜 문신으로만 그릴까. 다찌(액션 장면을 말하는 속어)가 없으니까 재미가 덜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金 : 어유, 남길 씨 정말 많이 다쳤어요. 이젠 다 회복됐나. 아, 오늘(60회) 방송 보면 알겠다.(60회에 오랜만에 비담의 액션이 있었다.)
Q : 알천(이승효 분)도 신종 플루에 걸려 대본 분량이 줄었다고 하던데? 朴 : 알천은 응급 대본을 써줬는데 원래대로 다 했어요. 金 : 그런데 상연 씨, 알천은 비담이랑 같이 연기하는 장면도 없는데 어쩌다 옮은 거지? 朴 : 둘이 같이 당구 치러 갔다가 걸렸다던가.
Q : (장검 대신 당구 큐대를 든 화랑 알천과 비담을 상상한다.) 金 : 배우들이 비슷한 또래라서 같이 잘 다녀요. 朴 : 고현정 씨도 신우염이고 요원 씨도 아팠고 언론에 나온 것보다 위험한 순간이 많았어요. 무사히 촬영을 마치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 현실 정치드라마 '선덕여왕'
Q : 극 중에서 현실 정치 이야기도 많이 다뤘습니다. 朴 : 화백회의에서 귀족 간 멱살잡이하는 장면이 미디어법 국회통과 풍자라고 하는데, 국회에서 몸싸움하는 건 늘 보던 거잖아요. 마치 국회의원들이 처음 몸싸움을 한 양 비판을 하는데 참 염치없는 거죠. Q : (하하하) 金 : 저희가 일부러 대입한 건 아니에요.
Q : 그런가 하면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비판도 있었어요. 김유신이 친일파고, 월야 등 가야부흥세력이 독립군이라는 논리죠. 朴 : 진짜 민감한 질문인데…. 역사적인 판단의 문제죠. 친일파는 역사적인 판단을 잘못했으니 책임을 져야죠. 하지만 김유신의 판단은 맞았어요. 金 : 김유신과 월야가 다른 점은 김유신의 금관가야는 스스로 신라에 병합되는 길을 택했다는 점이죠. 월야 같은 대가야인들 생각에 배신자로 볼 수도 있어요. 김유신의 편집 장면 중에 가야를 버린 할아버지를 원망하던 부분이 있어요. 그는 삼한일통에 일조해 가야인을 살리는 것으로 조부의 의지를 이해해요. 그러면서 덕만과 이(利)를 같이 해요. 유신이 덕만을 사랑해서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덕만의 이익이 합치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게 편집됐죠. 朴 : 알천 대사만 편집된 게 아니에요. 金 : 결국 미실이 진 이유는 미실은 시대가 가야 할 방향에 거꾸로 섰기 때문이라는 거죠. 덕만은 능력이 많고 적고를 떠나 정의 방향에 선 사람이기 때문에 이긴 것예요. 왕권이 강화될 시점에 미실은 맞지 않은 선택을 했기 때문에 졌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김유신은 시대에 맞게 처신한 거죠. 朴 : 김유신 덕에 현재 김해 김씨가 500만 명이죠. 백제 사택 씨, 부여 씨 다 사라졌어요. 가야는 망했지만 김해 김씨는 살아남았어요. 그것이 바로 김유신이 월야 같은 인물에게 안 넘어갔기 때문이죠. 반면 친일파들은 당시 시대의 흐름인 제국주의의 멸망을 판단하지 못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Q : 보수논객들은 영화 '화려한 휴가' 작가(박상연 작가)가 선덕여왕에서도 역사를 왜곡했다고 하는데요. 朴 : 영화에서도 5·18 왜곡하더니 드라마도 이상하게 쓴다는 거요? 金 : (하하하) 너 왜 여기저기서 왜곡하고 다니니? Q : (웃음) 계엄령을 선포한 미실의 모습이 전두환 정권과 겹쳐진다고. 朴 :에이. 그건 어불성설이죠. 그 누구도 미실에 갖다 댈 수는 없어요.
Q : 비담이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런 애가 왜 최종 보스냐는 비판도 있어요. 金 : 은근히 드라마에서 악역들이 하는 일이 없어요. (웃음) 朴 : 악역이 임무에 성공하면 드라마가 끝나요. 선덕여왕 중반에 대남보가 덕만 독살 임무를 받잖아요. 그게 성공했으면 드라마가 벌써 끝났죠. (하하) Q : 그나저나 대남보는 어디로 갔어요? 갑자기 실종됐어요. 朴 : 오늘(60회) 행방이 나와요. Q : 말로 때우셨어요? 朴 : 행방만 나와요. Q : 그럼 진덕여왕은 어디에? 朴 : (비장한 투로) 말로 나옵니다.
Q : 지금까지 나왔던 장면 중에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金 : 일식이 나오던 28회요. 미실의 시선도 비담의 시선도 덕만을 향하고 덕만은 군중을 내려다보고. 유신과 알천이 덕만 양 옆에 있고. 朴 : 앙상블이랄까, 대본도 저희가 제일 공들여 썼고 연기도 연출도 제일 좋았어요. Q : 드라마 마치고 가장 아쉬운 점은? 金 : 일식 에피소드 이후 덕만과 미실의 대립을 더 몰아야 하는데 인물 간의 관계로 갔어요. 매주 하다 보니 한번 잘못 생각하면 라인이 엉키는 거죠. 두고두고 그 지점이 안타까워요. 저희는 가슴을 쳤어요. 끝에는 아쉬우시겠지만, 마무리라고 생각하시고. 朴 : 비담은 멋있게 죽습니다!
Q : 시나리오 북은 안 나오나요? 朴 : 그러게? 왜 방송국에서 그 얘기가 없지?
Q : 드라마 끝나고 계획은? 차기작은요? 金 : 일단은 쉬고 싶어요. 1월까지는 종방 행사도 있고. 그 후에는 여행을 갈까 해요. END.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