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 2009년 드라마 결산 심사위원 좌담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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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7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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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3위에 이민호가 올랐다. 인터넷투표에선 압도적으로 1위였다. 올해 아이돌이 전성기였던 세태가 작품에도 반영된 것 아닌가. 패션도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KBS '꽃보다 남자', SBS '스타일'이 이런 유행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두 드라마를 어떻게 봤나.

△진='꽃보다 남자'는 상상력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려나가는 방식이 별로였다. 평론가로서 분석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본 작품이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일상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꽃보다 남자'는 그런 점에 둔감했다. '왕따' 같은 것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거르지 않고 마치 당연한 일상처럼 그려져 학생들이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일까봐 우려됐다.

'스타일'은 용두사미 드라마다. 매력적인 캐릭터인 박 기자를 갈수록 정신병 환자처럼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은 작품이다.

△호=이민호가 '꽃보다 남자'로 톱스타가 됐는데 연기자로서의 역량이나 가능성은 다음 작품을 봐야 한다.

'꽃보다 남자'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청춘 판타지였기 때문에 리얼리티보다는 과장된 설정이 강조됐다. 이런 경우 고정관념이 있는 기존 배우보다 신인 배우를 기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백지상태의 배우를 캐스팅해 그에 맞는 색을 칠하는 것이다. 이민호는 판타지를 심어주기 좋은 배우였다.

반면 '스타일'은 패션이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김혜수가 현실성을 무시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어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 이런 경우 시청자가 외면하는데 오히려 호응했다.

음악을 예를 들면 과거엔 기승전결로 완성되는 멜로디가 많았는데 요즘은 소위 '후크송'처럼 후렴구만 강조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없고 충격과 파격, 절정과 위기만 반복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가 범람하면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내용의 완결성이 있는 작품보다는 '꽃보다 남자', '스타일' 같은 드라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O2 최드연’ 심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세 명의 전문가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O2 최드연’ 심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세 명의 전문가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범=외주제작이 늘면서 시청률만이 드라마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굳어진 것도 이런 드라마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시청률이 10%가 안 돼도 좋은 드라마는 많다. 예전에 방영된 'TV 문학관', '베스트셀러극장'은 시청률이 낮아도 드라마 소재를 풍성하게 만들고 작품으로서의 질을 높였다. 지금은 15%에 이르지 못하면 드라마로서의 존재 의의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다.

△호=정보가 넘치다보니 대중은 문화 컨텐츠를 간직하기보다 소비하는데 열중한다. 자본 논리에 의해 작품이 결정되고 시청자 역시 드라마를 마음에 간직하거나 진지하게 감상하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자본도 중요하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작품을 만든다는 자존심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방송사도 이런 인식을 공유해야 한국 드라마 환경이 풍성해지지 않겠나.

내용보다 스케일만 중요해지고 그래야 톱스타가 캐스팅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연기자들은 소박하지만 느낌이 있는 작품에 출연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같다. 한국 드라마는 감성적인 것이 장점이고 그것이 한류의 밑바탕이 됐다. 앞으로 계속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후퇴할 수 있다.

△범=작품이 소모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연기자도 힘들 것 같다. 이민호도 '꽃보다 남자'가 끝난 지 반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드라마에서 부여된 이미지 때문에 다음 선택이 어려운 것이다.

요즘은 드라마를 감성으로 느끼기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빨리 긴장감을 느끼고 풀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김혜수가 '스타일'에서 보인 연기도 화려한 맛은 있지만 과정이 그려지진 않았다.

△진=나도 별로 좋게 보진 않았다. 아이돌 스타가 드라마 시장에서 소비되는 것도 우려할 부분이다. 문화산업이 너무 천박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소비되는 그들도 안타깝다.

나아가 중견배우가 설 자리를 잃은 것도 아쉽다. 김영옥, 박정수 등 출중한 중견배우들이 매 작품마다 엄마, 고모, 이모, 할머니 같은 역할만 한다. 그런 점에서 김혜자가 그 틀에서 벗어나 영화 '마더'로 한 차원 나간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드라마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중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KBS '미워도 다시 한 번 2009' 같은 작품이 많이 기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한류로 인해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배우의 참여 비중이 커졌다. 작품이 연기자의 주문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1차 제작자인 작가나 연출자의 몫이 배우에게 상당 부분 넘어가면서 요구사항도 늘어났다. 이런 점이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시청자 반응에 따라 작품 흐름이 좌우되는 부분도 눈 여겨 봐야 한다. 예전에 '겨울연가' 취재로 나를 찾아온 NHK 특파원이 "한국 드라마는 사전제작을 하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나도 "줄타기를 하듯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힘이 나온다"고 답했는데 지금은 그 균형이 너무 깨져서 연출자나 작가의 통제력이 상실된 것 같다.

△진=사전제작을 안 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역동성을 살리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인은 관조자가 아니라 무대와 소통하면서 함께 즐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한국 전통의 마당극만 봐도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고 어우러져 작품이 풍성해진다. 드라마도 시청자와 호흡하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범=동의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스타일'에서 김혜수가 '엣지녀'로 인기가 높아지자 극중 박 기자 출연 분량만 너무 늘어난 것은 작품 전체의 흐름을 깼다.

이승기나 한효주처럼 담백하고 심심한 이미지의 배우가 올해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는 어떤가. 특히 이승기는 인터넷투표에서 표가 많이 나왔다. 비결이 무엇이라 보는가.

△진=자극성 강한 '막장 드라마'의 반사이익을 봤다. 자극이 반복되면서 시청자가 지겨워한다. '막장 드라마'는 말도 안 되는 구성이 많아서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SBS '찬란한 유산'이 막장에 지친 시청자를 흡입했고 이승기, 한효주가 그 혜택을 받았다.

△호='찬란한 유산'은 가족을 밑바탕에 둔 정감 있고 고전적인 작품이다. 드라마에 잘 맞는 이미지를 지닌 배우가 캐스팅돼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이승기는 화려한 얼굴이 아니고 동생처럼 친근하면서 맑다. 한효주와는 함께 작업해 본 적도 있는데 역시 친숙한 느낌의 연기자다.

이처럼 긍정적 느낌이 충만한 배우와 정감 있는 얘기가 어우러진 작품이 '막장 드라마'나 규모가 큰 작품 틈새에서 선전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찬란한 유산'은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 같은 것만 제작하면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여러 모로 힘들다. 아시아적 가치가 반영된 '웰메이드 드라마' 제작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올해엔 외국에 수출해도 부끄럽지 않은 드라마가 많았던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범='막장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SBS '아내의 유혹'이나 '천사의 유혹', MBC '밥줘' 같은 드라마가 끊이지 않았다. 시청률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막장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 보는가.

△호=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남이 싸우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구경한다. 불구경, 싸움구경 하는 심리로 이런 드라마를 본다. 시청자가 보니까 제작자도 수치심을 잊고 자꾸 불만 지른다.

△진=자기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막장 드라마'를 절대 보지 못할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구경꾼 같은 심리로 욕하면서 본다. '막장 드라마'는 방영 당시엔 화제가 되지만 끝나고 난 뒤엔 사라져 버린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점이 시청자가 '막장 드라마'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범=맞는 말이다. 장서희는 '인어아가씨'에 이어 '아내의 유혹'에서도 자신을 던져 연기를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 배우의 열정까지도 사라지고 바로 잊혀져 아쉽다. 그래도 '막장 드라마'가 이젠 드라마의 한 장르처럼 굳어졌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 보는가.

△진=최근 수 년 간 SBS 드라마의 경향을 분석했는데 방영 당시 화제를 모은 '막장 드라마'가 다른 방송사에 비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가 종영 이후엔 남는 게 없다.

SBS 드라마 하면 아직도 많은 이들은 '모래시계'만 떠올린다. SBS가 오랫동안 '모래시계'를 이을 대표작을 내지 못하고 마니아 드라마도 선보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시청자들이 작품을 현명하게 선택한다는 증거다.

△호=자본의 논리를 무시할 수 없지만 향기가 나는 작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기획 자체가 어렵다. 사람들은 향기를 내뿜는 집보다 싸움 난 집에 달려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을 더 끌어당길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진=스크린 쿼터 제도가 한국 단편영화 제작에 힘이 되는 것처럼, 방송계에서도 시청률을 초월해 작품성 자체만을 내세운 단막극 편성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제도가 생기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외주제작사도 신인 작가나 연출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한국 드라마의 토양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정리=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O2] 2009년 드라마 결산 심사위원 좌담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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