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2일 공개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공소사실 요지에는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공기업 사장직 취임을 도우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인 정황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2006년 말 대한석탄공사 사장 후보제청권자인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던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게 “곽 전 사장을 도와주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고, 곽 전 사장이 석탄공사 사장 공모에서 탈락하자 다른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알아봐줬다는 것이다.
○ 석탄공사 탈락하자 남동발전 배려?
검찰에 따르면 곽 전 사장은 석탄공사 사장이 되기 위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건네는 등 총력을 기울였지만 2007년 초 사장 공모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산자부가 곽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 후보 1순위로 추천했지만 청와대는 2007년 2월 초 김원창 전 강원 정선군수를 석탄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 하지만 한 전 총리는 곧바로 곽 전 사장에게 다른 자리를 알아봐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이번에는 임명되지 않았으나 곧 다른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곽 전 사장에게 귀띔해 줬다. 실제로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서 이 말을 들은 후인 2007년 3월 초 한국전력공사 임원에게서 “한전 자회사 사장 지원서를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고 응모해 3월 31일 한전의 5개 발전 자회사 가운데 하나인 한국남동발전 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한전 안팎에서는 물류전문가인 곽 전 사장이 발전 자회사 사장으로 선임된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정황은 한 전 총리가 석탄공사 사장직 공모가 끝난 뒤 곽 전 사장이 다른 공기업 사장으로 가도록 힘을 써줬다는 방증이다.
○ 곽 씨, 정세균 대표 따로 만나
한 전 총리의 공소사실에는 곽 전 사장이 석탄공사 사장 공모 준비를 하는 과정에 산자부가 전면에 나섰다는 정황이 새롭게 포함됐다. 처음부터 석탄공사 사장직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던 곽 전 사장은 2006년 11월 산자부에서 “석탄공사 사장직에 지원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 석탄공사 사장 지원 준비에 나섰다. 당시 이원걸 산자부 2차관이 곽 전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고 과장급 직원이 곽 전 사장의 집을 찾아와 석탄공사 사장직에 응모하라고 권했던 것. 이와 관련해 검찰은 정세균 당시 장관의 지시로 산자부 공무원들이 움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 대표가 2006년 12월 20일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참석하기 전에 곽 전 사장을 따로 만난 적이 있는 것도 곽 전 사장의 인사에 관여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정 대표가 한 전 총리의 요청으로 곽 전 사장 인사 문제에 발을 담근 정황도 검찰이 파악했다. 2006년 11월 석탄공사 사장 지원 준비를 하고 있던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나의 공기업 사장 취임을 돕기 위해 산자부에 얘기를 해주고 총리공관 오찬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판단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했다는 것. 또 검찰은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 자리에서 한 전 총리가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에게 “곽 전 사장을 도와주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공소사실에 명시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공소사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 제3의 로비 루트 없었나
검찰의 곽 전 사장에 대한 수사 결과 금품이 오간 혐의가 밝혀져 기소된 사람은 한 전 총리뿐이다. 하지만 8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전방위로 인사 청탁에 나선 의혹이 많은 곽 전 사장이 딱 한 명에게만 금품로비를 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실제로 곽 전 사장은 2005년 6월 대한통운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공기업 사장 등에 취임하려고 유력 인사들을 접촉해 오다 한 전 총리에게도 선을 댔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곽 전 사장의 구속 직후에 야권 고위 인사 J, K 씨 등이 금품수수 대상자로 거론된 것도 이런 개연성을 말해 준다. 한 전 총리 수사는 검찰의 이날 기소로 종결됐다. 하지만 검찰은 곽 전 사장의 금품로비에 대한 수사가 모두 끝났는지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아 추가 수사 여지를 일단 열어뒀다. 곽 전 사장이 앞으로 어떤 말을 하느냐 등에 따라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던 수사가 다시 부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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