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사는 꼬마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저기 동굴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이런 탓에 그 꼬마는 동굴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성장하면서도 할아버지 말씀은 그의 뇌리의 한복판에 자리 잡는다. 또래 친구들이 동굴에 대해 호기심을 나타내면 괴물 이야기가 온 몸을 주눅 들게 한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입견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수 십 년간 그의 생각을 지배해온 괴물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의식이 행동을 얼마나 지배하는 지를 보여주는 얘기다. 2010월드컵을 개최하는 남아공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치안 불안’이다. 모두들 걱정과 우려를 쏟아낸다. 외교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살인은 1만8487건으로 하루 평균 50.6건이, 강도는 18만3297건으로 하루 평균 502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41배 수준이다.
강간과 절도도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남아공에 오기 전, 이런 무시무시한 통계 자료를 보며 두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남아공에 가면 범죄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가득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사고에 조심해야했다. 일단 숙소의 울타리 밖을 걸어서 나간 적이 없다. 오직 차량을 이용해서 목적지에 갔고, 그곳에서도 차량으로 움직였다. 택시나 버스는 엄두도 내지 않는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쇼핑몰 까지도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불운을 막기 위해서다. 가이드가 아는 교민이 최근에 차량을 탈취당하는 강도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욱 위축됐다.
현지 운전사가 운전 중 차량을 세우면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그려보곤 한다. 이런 생각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함께 온 취재진 대부분이 남아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숙소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길에 흑인이라도 서 있으면, “혹시”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차 안에선 “언제 걸어서 저기(쇼핑몰)를 한 번 가보지”라는 푸념도 나온다.
월드컵 개막이 5개월 남았다. 아직도 남아공을 경험하지 못한 취재진이나 응원단, 관광객들도 걱정이 앞설 법하다. 남아공 정부는 안전대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조치를 내놓겠다고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이 점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세계 축제를 불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러던 차에 앙골라에서 벌어진 토고대표팀 총격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남아공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치안 불안’이라는 불명예를 씻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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